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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2016년 '청와대 실록'의 민망함

이종호/OC본부장

# 올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이 축조된 지 220년 되는 해였다. 수원시는 이를 기념해 2016년을 수원 방문의 해로 정하고 대대적인 관광객 유치 캠페인을 벌였다. 수원 화성은 1796년 정조 임금이 그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조선 성곽 건축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동서양의 과학 기술 성과가 총결집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원 김홍도를 비롯해, 번암 채제공, 다산 정약용 등 당대 최고 예술인, 지식인들이 성곽 축조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그런데 지금의 수원 화성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닌 1970년대 이후 복원된 것이다. 어떻게 그런 복제품이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을까? 심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유네스코 심사관들도 처음엔 신청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국 측이 준비한 자료를 내밀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그 자료는 성곽 축조 전 과정을 그림까지 곁들여 완벽하게 정리해 놓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라는 공사 기록 문서였다. 이를 바탕으로 일제와 6·25 전쟁 등을 거치며 파손되고 손실된 부분을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는 설명에 심사관들도 감탄하면서 등재 승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게 기록의 힘이다.

#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기록 문화의 정수는 조선왕조실록이다. 이는 태조 이성계부터 25대 철종까지 472년간 왕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담긴 서책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됐다. 분량부터 엄청나다. 등재된 실록은 모두 2077책으로 아파트 12층 높이만큼이나 된다. 내용은 더 놀랍다. 임금의 모든 언행뿐 아니라 문화, 사상, 외교 관계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사랑과 증오, 미담과 기담 등 인간살이 희로애락이 빼곡히 담겨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장차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무궁무진한 콘텐트의 보고(寶庫)라 평가받는 이유다. 그러나 이 시대에 무엇보다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실록에 담긴 정신이다.

조선 임금 곁에는 늘 사관이 붙어다니며 왕의 소소한 일상까지 시시콜콜 기록했다. 그것이 사초(史草)다. 이 사초를 바탕으로 상소문, 승정원일기 등 당대의 여러 기록들을 참고해 편찬한 것이 실록이다. 거기엔 임금의 치적뿐 아니라 잘못과 실수까지 낱낱이 기록돼 있다. 전제왕권 시대였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었다. 사초는 임금도 함부로 볼 수 없었으며 완성된 선왕의 실록 또한 그 아들 왕이 볼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 두었던 것이다. 적지 않은 모순과 취약함 속에서도 조선 왕조가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조선의 지배층은 국왕부터 기록의 엄중함을 알았고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 2016년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혼돈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국회 탄핵까지 받았지만 의혹과 추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특검과 청문회가 진행은 되고 있지만 관련자들은 하나같이 발뺌과 핑계, 물타기 등으로 위기 모면에만 혈안이다. 이런 장면들을 보노라면 우리 시대 위정자들은 기록의 엄중함은커녕 후세의 평가조차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스스로의 항변대로 박 대통령이 억울한지, 떳떳했는지는 시간이 답해 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분명히 답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있다. 나라꼴을 이렇게까지 추락시킨 것, 나아가 국민의 마음을 쪼개고 상하게 한 책임은 결국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며 그렇게 바른 역사를 강조했던 이들이 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은 선조들이 일깨운 그 간단한 역사의 교훈조차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민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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