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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실에서 디지털까지…한눈에 보는 '사진의 역사'

신현식 기자의 대륙 탐방
조지 이스트만 박물관

내가 사진을 접한 것은 대학에 입학해 고건축을 연구하는 교수의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면서다.

한국의 고건축물은 대부분 목조건물이다. 유지,보존, 연구를 위해서는 사진자료가 필수다. 시큼한 냄새가 배어있는 암실, 붉은 등 아래 현상액 속에서 서서히 나타나던 화상이 나에게는 천지창조 그 자제 였다. 감동스러웠다. 사진일로 평생을 살게 된 동기는 생각보다 이렇게 단순했다.

암실에서 수많은 밤낮을 필름작업과 인화작업을 하며 했던 독백들이 노스탤지어로 남아있다.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던 필름시대의 사진은 감성적이다.

또 마감에 쫓겨 본 사진기자들은 특히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더욱 짙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출장에 필요한 카메라와 렌즈, 필름, 현상약품, 현상장비, 사진전송 장비 등을 챙기다 보면 개인용품은 갖고 가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후 필름 스캐너를 써서 인화하던 반디지털시대를 거쳐 2000년 3월부터 디지털 카메라를 쓰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 바뀌는 것은 수공업에서 산업혁명시대로의 전환에 버금가는 패러다임의 변화다.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뉴욕 주 로체스터에 있는 코닥의 조지 이스트만 박물관(George Eastman Museum)을 찾았다. 코닥의 파산으로 디트로이트시처럼 유령도시가 될뻔 했던 로체스터는 뉴욕 주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다. 로체스터는 여성운동과 노예 해방운동의 문화와 정신이 깃든 곳이다. 이런 토양으로 코닥의 파산에도 우수한 인력과 기업들이 몰렸다.

조지 이스트만이 만든 간편한 코닥 필름과 카메라는 사진의 대명사였다. 코닥 연구진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CCD)도 만들었다. 하지만 코닥은 필름시장의 붕괴를 우려해 디지털 카메라의 출시를 미뤘다. 그러자 1998년 디지털의 대중성을 예측한 일본 기업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면서 시장을 선점했다.

결국 코닥은 수익성 악화로 2012년 파산을 하고 말았다. 몇 가지 기술분야를 제외하고 JK 이미징(Imaging)이라는 중국기업에 넘어갔다. 아쉽지만 지금의 코닥제품은 메이드 인 차이나가 되어버렸다.

조지 이스트만이 살던 집을 개조한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사진의 역사 그대로다. 작가들의 작품과 카메라가 시대 별로 전시되어 있다.

내가 찾았을 때는 마침 미국의 국립공원전이 열리고 있었다. 1800년대 초기 풍경사진부터 에드워드 웨스턴, 앤젤 아담스를 비롯해 현대 작가들의 심상적 풍경사진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사진의 미래지향적 방향을 제시하는 훌륭한 전시회였다. 로체스터 시내에 있는 코닥 본사에 들렀다. 로비의 벽화가 된 코닥크롬 영상 앞에서 감회에 젖어 사진을 찍으려다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역사는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실감하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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