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누구야?” → “대한민국 농락”
이대 금수저에 분노 증폭, PC 유출로 뻥 터졌다
본지는 포털 점유율 1위 네이버에 실린 최순실 사태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80만 건을 분석했다. 기간은 최씨가 미르·K스포츠재단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9월 20일부터 최씨가 입국한 10월 30일까지로 잡았다. 이 기간 네이버 랭킹뉴스(많이 본 뉴스) 정치·사회 부문 기사 가운데 최순실 사태 관련 기사를 뽑아낸 뒤, 기사에 달린 댓글을 형태소 단위로 쪼개 빈도·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분석은 데이터 공개 운동을 펼치고 있는 '코드나무'의 도움을 받았다.
그 결과 최순실 사태를 바라보는 민심이 의혹·분노·자책 등의 과정을 거쳐 변화했고, 그때마다 뚜렷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1기 잠재기 (9월 20일~10월 10일)
: 최순실이 누구야?
최순실 사태가 사람들의 관심사 밖이었던 시기다.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 역시 총 19만여 개로, 전체 분석기간 중 가장 적다.
이때는 최순실보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더 주목을 받았다. 재단이란 단어는 전체 단어 중 2번째로 많이 언급된 반면, 최순실은 9번째였다. 지금은 두 재단이 최씨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만, 이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재단은 전경련, 기업 같은 단어와, 최순실은 대통령, 최태민, 우병우 등 대통령 주변 인물들과 그룹을 이룬다. 두 재단이 최순실과 관련 있다는 뉴스는 9월 20일 이후 꾸준히 나왔지만, 사람들은 둘을 따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두 재단과 관련해 최순실보다는 정권·정부와의 관련성에 더 주목했다. 재단이 정부를 매개로 야당, 제기, 의혹같은 단어로 연결되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재단과 관련된 여러 주장에 대해 정치적 배경을 가진, 그래서 사실 여부를 따져봐야 하는 의혹 정도로 받아들인 것이다.
2기 증폭기 (10월 11일~23일)
: 딸이 이대에 특혜 입학했다고?
1기(21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기간(13일)임에도 이 기간의 댓글은 약 11만7000개로 6배 넘게 늘었다. 무엇이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켰을까. 단어 연결망을 보면 답이 보인다.
이 기간 가장 도드라진 단어는 이대다. 댓글 내 언급된 단어 빈도 톱5 안에 이대(5위)가 이름을 올렸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대 부정 입학, 학점 취득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을 다룬 기사들이 이 시기 '많이 본 기사'에 포함됐다. 단어 연결망에 최순실 연관어로 딸, 정유라가 등장한 건 그래서다. 정씨 관련 의혹은 결국 이대 총장의 사퇴(17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왜 '이대 사태'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을까. 단어 연결망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대를 중심으로 한 단어군과 최순실, 정유라 관련 단어군은 특혜라는 단어를 고리로 이어졌다. 저성장이 심화되고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수저 계급론'이 등장했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인생이 결정되어 버린다는 극단적인 주장이다. 그럼에도 대학 입시는' 흙수저'가 노력으로 '금수저'를 이길 수 있는 마지막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영역에서마저 최씨와 딸 정씨가 특혜를 누렸다는 사실에 대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정치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금수저 논란으로 이어지며 폭발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대 특혜 의혹은 정치에 무관심한 일반 대중까지 최순실 사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뭐든 하나만 떨어지면 불이 확 붙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태가 된 셈이다.
3기 폭발기 (10월 24일~25일)
: 대한민국이 농락당했다
마침내 불이 붙었다. 이 기간 댓글은 15만 개로 급등한다. 2기의 2배가 넘는다. 2기(13일)와 3기(2일)의 기간차를 감안해 1일 평균 댓글 수를 비교해 보자. 2기에 약 9000개던 1일 댓글 수는 3기 들어 약 6만3000개로, 7배 가량 늘어났다.
24일 JTBC의 최순실씨 PC보도가 뇌관 역할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씨의 PC 안에는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ㆍ비서진 교체 등을 다룬 청와대 내부 문서, 대통령의 미공개 휴가 사진 등이 들어 있었다. PC소유자는 대통령의 실제 발언보다 먼저 연설문을 열람했고, 고치기 까지한 흔적이 발견됐다.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지시를 한 게 아니라 최씨가 박 대통령을 코치한 정황이 드러난 거다.
이같은 사실은 최순실, 대통령과 관련된 단어군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3기 들어 대통령과 최순실이 더 강하게 연결된다. '최순실이 사실상 대통령이었다'는 댓글이 그만큼 많았다. 대통령 관련어로 꼭두각시, 최순실 관련어로 시키다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은 JTBC의 보도 후 직접 사과를 했다. 하지만 사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변명'이라고 받아들였고, '녹화'라는 형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잊혀진 단어가 됐지만 이 시기엔 개헌도 자주 등장한다. 박 대통령이 이날 오전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론을 꺼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헌은 덮다를 고리로 최순실과 연결된다. 민심은 개헌을 최순실 사태를 덮기 위한 카드로 받아들였단 얘기다.
4기 자책기 (10월 26일~27일)
: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내가 부끄럽다
이 기간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였다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댓글 단어 연결망에 부끄럽다는 단어가 유의미하게 등장한 게 이 시점이다. 이 단어는 전 기간에 걸쳐 나타나지만, 4기에 가장 많이 언급됐다.
부끄럽다는 국민을 중심으로 형성된 단어군에서 발견된다. 국민은 그전까지 개, 돼지와 같이 언급됐다. 실제 댓글을 보면 '국민을 개·돼지로 아나' '역시 정부가 국민을 개·돼지로 알았다'는 내용이 많다. "민중은 개·돼지다"라고 말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그림자다. 하지만 4기 들어 '대한민국 국민이란 게 부끄럽다' '이런 대통령이 선거로 뽑혔다니 (내 자신이)부끄럽다' 같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부끄럽다는 감정은 사회를 향한 것이기도 했고, 스스로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세계일보는 27일 최순실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다. 단어 연결망에도 인터뷰란 단어와 함께 세계일보가 등장한다. 인터뷰는 못하다, 못하다는 다시 검찰로 이어진다. 실제 댓글을 보면 '언론이 하는 걸(최순실 찾기) 검찰은 왜 못하냐'는 내용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읽힌다. 세계일보란 단어는 사이비, 종교 등으로 이어지는데, 댓글을 보면 사람들이 최씨가 인터뷰 대상 언론으로 세계일보를 고른 배경을 궁금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5기 2차 폭발기 (10월 28일~29일)
: 푸념은 그만, 이제 직접 나설 때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의미의 왝더독(wag the dog). 경제에선 파생상품 시장이 현물 시장을 뒤흔들 때 쓰는 용어지만, 가상의 온라인 현상이 실제 현실을 움직이는 걸 가리킬 때도 널리 쓰인다. 최순실 사태에서도 왝더독 현상이 나타났다.
29일 광화문 광장에 최순실 사태에 항의하는 시민 3만명이 모였다. 하지만 댓글 여론이 폭발한 건 25일(3기)이었다. 온라인 상의 ‘성난 민심’이 나흘 뒤 오프라인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사람이 움직이는 데엔 제약이 따른다. 회사·학교에 가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한다. 화가 난다고 당장 광장에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데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만 꺼내면 된다. 온라인이 먼저 움직인 건 그래서다.
하지만 일단 한번 몸통이 움직이면 꼬리는 크게 요동친다. 오프라인에서 민심이 폭발한 이 시기, 온라인은 다시 한 번 댓글로 들끓었다. 이 기간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은 23만여개로 3기 폭발기(25만여개)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오프라인의 영향을 반영하듯 시위가 주요 단어로 등장했다. 시위는 시민이란 단어를 고리로 국민으로 이어지고, 국민은 다시 분노, 힘 같은 단어와 연결된다. 개·돼지라는 자조적인 푸념을 넘어 시민이 직접 나서 사태를 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3기~5기 사이엔 재미있는 변화가 하나 눈에 띈다. 탄핵이란 단어는 3기에 급증했다 줄어든 반면 하야란 단어는 꾸준히 늘어 5기에 가장 높은 빈도를 기록한다. 이유가 뭘까. 3기 단어 연결망을 보면 탄핵은 야당, 못한다 등의 단어와 이어져 있다. 야당이 탄핵을 주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사람들의 의구심을 읽을 수 있는 지점이다.
6기 전환기 (10월 30일)
: 검찰이 수사한다고? 글쎄…
최순실씨가 이날 급거 귀국하며 댓글 단어 연결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검찰이 주요 단어로 등장한 것이다. 최씨가 귀국하면서 검찰 수사에 탄력에 붙을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언론이 사태를 주도해왔다면 이제 주도권은 검찰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검찰을 바라보는 민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검찰은 소환, 체포, 안하다, 증거, 인멸 같은 단어군과 권력, 돈, 아직, 정신, 못 같은 단어군으로 이어진다. 검찰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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