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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국민이 잊으면 정치는 썩는다

김 종 훈 / 야간제작팀장

'최순실 사태'로 한국 언론들이 오랜만에 칭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 후배 기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가슴을 쳤다.

"기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닉슨은 레임덕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힘센 재선 직후에 문제가 불거졌고, 이듬해 사임했다. 몇 년 전 국감 영상이 다시 돌고, 그림자조차 못 잡는다던 인물의 몇 달 전 앰부시(매복) 인터뷰 영상도 나온다. 세상에나.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온갖 단독과 특종의 레이스에서 소외된 한 신문사가 더 소중한 것 같다. 힘 센 사람이 가장 힘이 센 때 부딪쳤으니 제대로 된 제보도 못 받고, 실체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그 기자들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지지율 숫자'라는 큐 사인을 읽지 못한 죄로. 다음에 또 힘 센 사람이 가장 힘이 셀 때 나쁜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꾸 든다. 또 힘이 빠지길 기다려야 하는 거라면, 힘 센 사람의 나쁜 짓은 영원히 계속되겠지."

사람의 망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느꼈다. 불과 2년 전의 일인데 벌써 잊혀졌다. 2014년 후배가 언급한 이 신문은 최순실의 전 남편인 정윤회에 대한 단독 보도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조직 실세인 정윤회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문건을 폭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조직은 사실이 아니며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비난했다. 이후 '보복'의 냄새가 짙은 세무조사 등 청와대의 압력에 사장이 바뀌고 취재를 한 사회부 기자들은 다른 부서로 뿔뿔이 흩어지고 사퇴를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 중 한 명은 '정윤회 문건' 보도 후 상황을 이렇게 밝혔다.

"'정윤회 문건' 기사를 통해 네 공직자의 인생이 크게 달라졌다. 한 명은 목숨을 끊었고, 한 명은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한 명은 끝 모를 수사를 받고 있고, 한 명은 정권을 위협한 수괴로 지목돼 법정에 설 예정이다. 취재팀은 그 가족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다. 취재팀은 보도를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어떤 후회도 없다. 역사를 기록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도 달게 받기로 했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시간은 진실의 편이라고 믿는다. 진실의 순간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취재팀을 격려한 많은 이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 순간이 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기자이기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이들이 얼마나 피눈물이 났을지 마음이 아프다. JTBC 뉴스룸이 '최순실 문건' 특종을 한 날 뉴스를 마치면서 흘러나온 노래는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 였다. 손석희 앵커는 "내일도 저희들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선을 다했을 때 JTBC 뉴스룸처럼 박수를 받을 때도 있지만 처절하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은 과거를 잊지 않는 국민들뿐이다.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과거를 잊고 표를 던졌기에 정치가 이렇게 됐을까 한탄스럽다. 국민들이 잊어버리면 정치는 썩는다. 정치인들은 정당 이름을 바꾸고, 다른 이슈를 제기하며 '물타기'를 하고, '천막 당사'를 만들고 단식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불쌍한 척하고, 심지어 교과서 내용을 바꿔가며 국민들에게 망각을 요구한다. 과거가 잊혀지기를 원하는 정치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얼굴과 이름만 바뀔 뿐 부패와 탐욕 그리고 '갑질'의 역사를 계속 만들고 지워갈 뿐이다. 이번 사건도 또 어떻게 잊혀지게 만들지 그들은 벌써 고민하고 있다.

국민의 망각은 언론에도 마찬가지다. '영웅'이 됐던 때도 있지만 지우고 싶은 과거도 많다. 특히 천박한 정치인들의 소행에 맞장구를 치고, 그들의 부패에 눈을 감았던 때가 많다. 그런 과거를 독자들이 하루빨리 잊기를 바라며 "언제 그랬냐"며 발뺌을 한다. 정치와 언론이 존경을 받을 때 나라가 제대로 선다. 그렇게 되려면 국민들이 망각의 습관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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