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맥 세상] 박근혜·최순실의 '간화범폐'
이원영/디지털편집국장
그러나 간의 소설작용에는 자주 문제가 발생한다. 간병은 정서적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화를 잘 내거나 억울(조급)한 마음(스트레스)이 풀리지 않으면 간에 화(불)가 쌓인다. 또 하나는 소위 '간땡이'가 커질 때다. 간의 소설작용이 필요 이상으로 활발하게 나타나면서 기운이 넘쳐날 때다. 흔히 '간이 크다'고 말할 때는 간의 소설작용이 항진할 때로 보면 된다.
간에 화가 쌓이거나 간땡이가 커질 때는 소설작용에 장애가 생기고 간에 쌓인 화기는 옆에 있는 폐를 침범하게 된다. 이것이 간화범폐다. 기침을 계속하거나 심하면 각혈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이 상태까지 진행되면 폐 뿐만 아니라 몸의 진액을 생성하는 비장의 기능도 방해를 받게돼 결국은 기와 음액이 모두 피폐해지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를 벼랑끝으로 몰고간 최순실 스캔들을 처연하게 바라보면서 불현듯 두 사람의 간 건강 상태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박 대통령의 '소설기능'을 상실한 간, 최순실의 '커진 간땡이' 말이다.
박 대통령을 향해 언론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이 불통과 고집이다. 대통령에게 직·간접적으로 원인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 줄곧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고, 항상 오불관언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화살을 피해갔다. 다양한 의견을 놓고 부드럽게 대화하며 해법을 모색하는 모습보다는 그와 각을 세우는 인물들은 예외없이 잡초 뽑듯 뽑았다. 그러다보니 박 대통령의 주변에는 예스맨들만 남았고, 박 대통령의 '레이저 눈빛'에 그저 찍소리 못하는 참모들만 그를 에워쌌다. 이런 내각에는 소통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상명하복, 복지부동만 팽배할 뿐이다. 누구하나 대통령에게 직언할 사람도 없었다.
'소설기능'을 상실한 간은 화를 불렀고, 기침하고 피를 토하는 간화범폐 지경까지 도달해버린 것이다. 기와 음이 소진된 박 대통령이 예전같은 건강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순실은 '간땡이'가 너무 커져서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둘렀다. 아무런 공적 책무도 맡지 않은 사람이 다만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이용해 돈을 챙기고 권력을 행사했다. 간땡이가 커지면서 누리던 권세에 취해 간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은 정작 몰랐다. 너무 오래 커진 간은 급기야 자신은 물론 대통령의 지위까지 위태롭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병이 위중한 상태까지 가지 않으려면 몸에 조금 이상이 왔을 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 원인을 찾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이상 신호가 왔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하던 방식을 계속 고집한다면 더 큰 병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박 대통령에 낙인 찍힌 불통, 고집이란 말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오늘과 같은 파국적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이라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아차 하는 마음으로 신속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이 정도의 국정난맥을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때가 너무 늦었다.
'소설작용' 잃은 간이 병을 부르듯, 소통 잃은 대통령이 나라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한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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