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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자를 통해서 보는 우리의 고대사 (1)

이문형/참桓우리역사모임미주회장

고대사 정립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작업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를 올바르게 인식하면서 현실을 바로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밝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것이다. 앞에서 역사와 문화, 언어와 문자, 과학(천문학 포함)은 물론 기록의 문화에서 한민족은 류의 선도적 역할을 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훈민정음에 앞서 가림토문자의 유래부터 알아보자.

<가림토(加臨土) 문자>

단군조선 제3대 ‘가륵’단군께서 B.C 2182년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의 하늘 소리인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새로이 만들어 사용했으며 이것은 후일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의 모체가 된다.

이 가림토 문자는 실제로 서울대 이상백 교수에 의해서 1930년대에 중국 길림성 경박호 암벽에서 발견되었으며, 그것이 탁본되어 94년 12월 문화일보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가림토 문자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으며, 훈민정음이 우리민족 최초의 문자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 이 가림토 문자 역시 우리 민족 최초의 문자가 아니라는 것은 다음의 기록을 통해 알 수가 있다.

단군조선시대에는 선대인 배달국으로부터 계속 사용해온 진서(眞書), 즉 녹도문자가 있었다. 그러나 배움이 부족한 일반 백성들이 녹도문을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또 음문자이며 만물을 형상화한 뜻글자인 녹도문만으로는 완전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렇게 해서 가륵단군 경자년(기원전 2181년)에 단군조선의 문자인 가림토(加臨多) 문자가 탄생하게 되며, 가림토 문자(38자)를 토대로 더 쉽게 정리하여 4177년 뒤 재창조된 것이 바로 훈민정음(28자)이다.

다시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문에 명시된 내용을 살펴보면 세종께서는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니고 바른 소리를 찾아냈을 뿐, 글자는 옛 신전을 참고한 것이라는 기록들이다. 문제는 그러나 언해본의 해석은 세종이 언문을 처음 만든 것처럼 왜곡하여 적어 놓았으며, 그로 인해서 전 조선에서 쓰였던 언문이 우리 조선 앞 선조들의 업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없게 조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조작되고 왜곡된 언해본을 일제 치하 조선총독부가 국정교과서에 실음으로써 그것이 훈민정음 해례의 진짜 내용인양 굳어져버리게 됐고, 강단사학은 지금껏 식민사관을 이어오며 그것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해본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1차 언해본에 속하는 ‘월인석보 원간본(일명 서강대본)’이고, 또 하나는 2차 언해본인 ‘고려대 육당문고본(일명 박승빈 본)’ 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해석된 내용이 다르다. 2차 언해본에는 1차 언해본에서 첫 장에 보이는 중요한 번역오류를 교정한 것이 보인다. 이렇듯 조선시대에 이미 교정된 2차 언해본이 있음에도 이상하게 지금 우리나라 초중고에서는 잘못 번역된 1차 언해본만 정본으로 삼아 “나랏말싸미”만 집중교육하고 있는 실태다.

혼란이 없게 하려면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문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언문이 우리 민족의 고대로부터 전수되어 온 고유의 문자였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언문을 세종이 만들었다고 가르치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문자를 발명했던 우리 선조들의 빼어난 지혜의 문명을 어리석고 미개한 조상들로 매장시켜버리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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