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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로마 교황이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서신과 역사왜곡의 위험

로마 교황 요한 22세(교황 재위:1316-1334)가 1333년, 당시 고려 충숙왕(忠肅王 27대왕, 재위 1313-1330 복위 1332-1339)에게 보낸 라틴어 서신의 필사본이 교황청 비밀문서 수장고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서신에는 “왕(고려국왕 충숙왕)께서 그곳(고려)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대해 주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라는 내용이 있고, 이 서신을 전달할 임무를 맡았던 니콜라스 사제가 베이징으로 향하던 도중 사라져 편지가 고려왕에게 전달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의 다큐멘타리 영화 ‘금속활자의 비밀’(감독 우광훈) 제작팀이 작년 8월 바티칸 비밀문서수장고에서 이 서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촬영하는데 성공했다고 9월29일에 밝혔고, 전북 전주에 본부를 둔 세계종교평화협의회 관계자도 지난 6월 말 바티칸 기록원 고문서 담당자인 엔리코 플라이아니 박사를 만나 요한 22세가 고려왕에게 보낸 서신을 확인하고 지난 8월 우편으로 서신의 사본을 전달받고 교황청과 협의를 통해 서신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전한다.

한반도에 온 최초의 유럽인은 1594년 임진왜란때 스페인 출신 세스페데스 신부가 최초다. 이 서신의 발견으로 유럽과 한국의 교류는 그보다 261년 앞당겨지므로,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시대 종교사를 다시 서술해야 하며, 한국 교회사를 수정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또 1377년에 간행된 고려의 금속활자인쇄본 직지심체요절과 관련시켜, 당시 강성했던 원나라가 유럽에 미친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중국의 실크로드를 통해 고려의 금속활자기술이 유럽에도 전래되어, 고려보다 뒤늦게 1455년 활판인쇄에 성공한 구텐베르크의 활자발명에도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가설까지 주장되기도 한다.

물론 고려의 충숙왕 때는 원의 침입으로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 되어 혈연에 의한 연합국 형태로 정권을 행사하며, 원이 고려의 내정에 깊이 간섭하던 시기로 원과의 관계가 대단히 밀접하게 전개되었으므로 이 서신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주장들을 고려해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중대한 의문점도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첫째 이 서신의 출처를 보면 소위 ‘로마 교황청 비밀수장고’에서 나온 문서로 고려 충숙왕 때의 한국사 문헌에 전혀 기록이 전하지 않는 교황청만의 일방적인 문서라는 점이다. 따라서 작성내용이나 작성과정은 물론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를 고려 충숙왕 시대와 연관시킬 만한 진정한 역사적 문서로 보기에는 의문이 많다.

둘째 수만리 떨어진 고려국으로 서신을 전달하기 위해 교황이 사제를 파견했다면 당연히 그 소임을 수행하기 위해 어떠한 경로와 이동수단을 이용해 로마에서 고려로 향했는지가 보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보고나 언급이 전혀 없다. 다만 북경을 향하다 어디에선가 실종되어 실제로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서신의 전달과정과 그 결과에 관해 애매하게 설명한다. 전달경로와 전달수단도 알 수 없는 이 서신을 진실로 고려국왕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성된 교황청의 대외문서로 볼 것인지도 의문이다.

셋째 고려국으로 보내는 서신이 라틴어로만 작성되었다는 것도 기이하다. 교황청에 고려말을 쓸 줄 아는 사제가 없다면 이 문서를 고려국왕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라틴어를 고려의 언어로 통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동행하여 전달해야 할 것인데 그러한 의사표시 전달방법에 관해서도 명확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 서신의 작성형식이나 내용, 출처 및 유래와 전달과정 등을 볼 때 이러한 의문이 명확히 고증되지 않고 있다. 어쩌면 한국 천주교 전래에 대한 역사적 연혁을 앞당겨 한국인과 천주교의 인연을 강조하고 종교적 포교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후대에 만들어진 문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교황청 비밀수장고에서 나온 문서라는 점만을 믿고 이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발견된 문서에 관한 명확하고 철저한 역사적 검증이 먼저 이루어져, 만의 하나라도 교황청의 권위에 누가 되고 나아가 한국 종교사를 왜곡하는 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라 생각된다.





황원흥(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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