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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색에 취해 걷는 길. 캐나다 로키 트레킹. 1

요호의 숨겨놓은 비경. 오하라 호수 트레일.
산정 빙하 호수 절경에 발걸음 안 떨어져
명경지수에 만년설봉과 고목들 잔영 그득

가을 색이 완연한 캐나다 로키의 풍경속으로 들어온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습니다. 9월의 로키는 비가 잦은데 기실 그 비는 산정에는 눈으로 쌓여 더욱 수려한 경관을 그려낸답니다. 간밤에도 비가 산하를 촉촉히 적셔놓았습니다.

산마루를 넘어가는 구름이 푸른 하늘을 벗겨내는 것을 보면서 비록 간혹 비 뿌린다 한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혹여나 오늘도 어제처럼 경쾌한 산행을 할 수 있을까 기대감을 품게 합니다.

레이크 오하라. 캐나디언 로키가 숨겨놓은 이 비경을 보기 위해서는 11km 산길을 450m 올라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데, 그 만큼의 고된 발품을 팔아야합니다. 물론 셔틀버스를 운행합니다만 외인들의 방문을 원치 않는 당국의 농간으로 그저 그림의 떡일 뿐.

그래도 3시간을 투자해 걸어 올라온 자들에게는 자리가 남는 경우 하산길 버스는 태워줍니다. 물론 요금은 왕복 요금과 별반 차이도 없이 내야하지만요. 말하자면 보호하고 싶은 지역에 굳이 보러 오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3시간의 오름길을 걸어서라도 올라오라는 것이죠. 그리고 시작되는 왕복 5시간의 오에사 호수까지 가는 길. 이 길이 진정한 로키의 매력이 내밀하게 녹아있는 천상의 진면목을 보여준답니다. 산정 빙하 호수들이 빚어내는 천하 절경을 오늘은 기어코 두 눈에 담으리라 각오하고 산장 숙소를 나섭니다.

이 저주받을 명경을 보기 위해 지루한 비포장도로길을 그저 아름다운 동행들과의 정담으로 해소시키며 걸어갑니다. 그래도 쭉쭉 뻗은 전나무들의 사열식을 받으며 오르니 기분도 상쾌해 지는데, 이내 강물이 달려와 수인사를 하며 지나칩니다. 빙하 녹은 물이라 옥색을 옅게 띤 예쁜 물인데 어느 구간에서는 굉음을 울리며 노도와 같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갑니다.

볼만한 풍경이기도 하거니와 저 물길을 따라 카약킹이나 레프팅을 하는 내 자신을 상상하며 즐거이 걷습니다. 이곳 오하라 호수 가는 길에는 어느새 가을이 살포시 내려 앉았습니다. 도로 갓길에는 풀잎들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단풍나무과 관목들은 붉은 채색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짧게 여름을 태우고 지나가는 오하라 호수가는 계곡엔 황금빛 들판 풍경이 눈에 가득 잡힙니다. 지금은 희끗희끗 얼굴을 내미는 산봉들이 어제 밤 내린 눈을 이고 햇살이 없어도 하얗게 눈부시고 있습니다. 더 보고 싶어 더 빨리 만년설봉들을 만나고 싶어 자연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거리 표시 숫자를 마치 신앙처럼 섬기며 줄여가는 길. 드디어 우리는 호수에 이르렀습니다. 호수 색깔을 그대로 머리에 인 로지들이 그림처럼 세워져있고 사방으로 포진한 설산 아래 고요하게 누워있는 오하라 호수. 진정 로키의 정령이 서린 곳입니다. 고사목들의 수장이 그대로 보이는 티없이 맑고 고운 빙하수가 호수를 넘쳐 시내로 흐르고 폭포가 되는 물의 향연을 펼칩니다. 이곳에서 오백미터 더 올라가면 이 골짜기의 마지막 여로인 오에사 호수로 가는 길이 곧 선계로 드는 길이며 이 고단한 트레킹의 위안입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몸이 쳐집니다만 간단히 시장기를 과일로 감추고 참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비탈길이 시작되는데 부른 배로하는 등산은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초반경사길 그 힘겨움 속에서도 한숨 돌리며 몸도 돌리면 그때 마다 다른 표정으로 품어주는 아름다운 오하라. 이 매혹의 호수를 가장 감동적으로 볼 수 있는 이 세상 가장 훌륭한 가든 식당자리로 벼랑 위에 자리잡고 오찬을 나눕니다.

문명의 이기로 몇분이면 끓여내는 화력좋은 버너로 조리한 구수한 된장 찌개. 고향의 맛과 향기가 미려한 오하라 호수를 덮습니다. 이렇게 빼어난 풍경속에서 정상주 한잔 아니 나누면 어찌 감히 산객이라 할지요. 와인 한잔씩 걸치니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명경지수. 깨어질듯한 수면 위에 다시 그려놓은 산그림자의 잔영이 드리우고 쌍쌍의 물오리 떼가 그 위를 유영하며 가늘고 긴선을 그어놓으니 어느 천재 화가가 그린 완벽한 풍경화가 됩니다. 이렇게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순간. 삶이 행복하다 외치고 싶습니다.

마냥 풍치에 취해 있을수만은 없습니다. 오를길도 만만치 않게 남았을 뿐더러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소나무 숲길을 지나가니 전방이 탁트이는 너덜지대가 나오고 그 끝에는 수려하게 내리는 폭포가 보입니다. 물기에 젖어 매우 미끄러운 폭포 옆의 바윗길을 곡예하듯 올라가니 설산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누워있습니다. 물론 최종 목적지인 오에사 호수는 아니고 그 예고편이랄까 물빛 고운 자태로 수많은 성상을 버티어 온 로키의 고목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보여줍니다.

한숨도 돌릴 겸 사진도 몇컷을 찍으며 잠시 머뭅니다. 다시 누런 풀잎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을길을 올라 드디어 정점에 다다랐습니다. 제법 큰 면적을 지니고 호수 언저리에는 유빙들이 떠있고 구름마저도 더 이상 흘러갈 수 없도록 꽉찬 빙산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옥색의 고운 호수빛과 검은 거벽 그리고 하얀 설봉 그 위엔 푸른 하늘. 왜 로키의 당국은 이 곳을 그리 사수하려는지 짐작이 되는 날것 그대로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너른 바위 위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그냥 그 비현실적인 풍경에 빠져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아무도 자리를 뜰 생각도 일지 않는 양 우두커니 지켜 보기만 할 뿐... 바람이 시립니다. 하산은 해야하는데 두고 가기에는 너무도 미려하여 돌아선 몸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엉거주춤한 자세. 가버리면 잊혀질까 사진으로 몇번 더 확인합니다.

참으로 고마웁게도 따스한 심성들을 지닌 브라질 동포들이라 취사하는 나의 노고를 들어준다며 저녁을 쏘시겠다 합니다. 유럽같이 아담한 산촌마을 반프에 들어 스테이크를 전문으로 하는 맛집을 방문했습니다. 풍성하게 주문을 하고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도록 레드, 화이트 와인 모두를 시킵니다. 후각으로 먼저 마시고 혀에 감기는 그 감미로운 와인의 향취. 빈속에 한모금 마시니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그 궤적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열심히 걸은 자. 그 행복한 식도락의 보상이 있을지니 캐니넷 셰비뇽의 와인과 더불어 저녁 정찬의 분위기가 정으로 충만합니다. 넘치는 손님들로 자연 분위가 왁자지껄하니 우리도 덩달아 목소리도 커지며 한번씩 던지는 농담으로 파안대소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이제는 시간의 흐름도 정지한 듯 로키의 하루도 멈춰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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