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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LA 다저스의 '붉은 10월'

박용필 / 논설고문

'레드 옥토버(Red October)' 곧 '붉은 10월'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영화팬이라면 금방 옛소련의 핵잠수함을 떠올릴 것 같다. 톰 클랜시의 걸작 스릴러 '레드 옥토버'는 영화로도 제작돼 세계적인 흥행몰이를 했다.

'붉은 10월'은 초고속으로 항진을 해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최첨단 잠수함. 그러나 함장(숀 코너리 분)이 미국 망명을 시도하자 소련은 '레드 옥토버'를 폭파하려 안간힘을 쓴다. 미국 또한 잠수함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추격명령을 내리는데. 주연을 맡은 코너리의 헤어(가발)에 쓰인 비용만 해도 2만 달러가 넘어 화제가 됐던 영화다.

야구, 특히 LA 다저스 팬이라면? '레드 옥토버'는 포스트 시즌을 뜻한다. 10월이 '가을의 고전'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 왜 구태여 '붉은'이라는 사족을 붙이는 건지.

'레드 옥토버'는 사연이 있다. '다저스의 목소리' 빈 스컬리와 함께 하는 10월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 스컬리는 아일랜드계다. 유전인자 탓인지 헤어가 '붉은' 색깔이다. 다저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팬들은 벅찬 감동을 누를 수 없다. 스컬리의 중계를 한달 더 들을 수 있어서다. '레드 옥토버'엔 내친김에 월드시리즈까지 제패했으면 하는 팬들의 염원이 함축돼 있다고 할까.

스컬리의 또다른 별명은 '미스터 달싯(Mr. Dulcet)'이다. 그의 중저음 목소리가 바리톤 가수처럼 감미롭다고 해서다. 여기에 아주 평범한 영어로 중계를 하다 보니 누구나 중독이 될만도 할 터. '붉은 10월'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겠다.

한인사회와도 인연이 깊다. 20년 전 박찬호가 다저스에 몸 담고 있을 때 얘기다. 스컬리는 박찬호를 일컬어 '마운드의 신사'라고 치켜세웠다. 등판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주심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서다. 훗날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이단옆차기로 상대선수를 눕혀 '신사'의 이미지가 다소 빛이 바랬지만.

IMF 한파가 한국을 휩쓸 무렵, 스컬리는 이런 얘기도 했다. "챈호팍(박찬호)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이에요. 한국민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고…." 경제난에 시달리는 고국에 박찬호의 승리 소식이 큰 위안이 되고 있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멍하기도 했다.

스컬리는 한국을 늘 긍정적으로 봤다. 박찬호가 등판하는 날엔 누구한테 배웠는지 한국을 '열공'해 와 팬들에게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놨다. 주류방송 앵커들이 서울 도심의 격렬한 반정부 시위 등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도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아무리 스포츠 중계라지만 한국에 우호적인 멘트가 TV에 소개된 건 스컬리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에게 훈장 하나쯤 달아줄만도 했는데.

다저스 중계만 67년째인 스컬리는 올해 89세. 진작 은퇴를 하려 했지만 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오늘에 이르렀다.

"야구가 언제 재밌냐고요? 9회 홈팀이 1점차로 지고 있을 때지요." 스컬리가 남긴 명언 중 하나다. 스컬리가 다저스 구장에서 홈팬들에게 작별을 고한 지난 25일 그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2-3으로 지고 있던 9회, 동점 솔로포가 터져 다저스는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그러고는 끝내기 홈런 한 방으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이라는 멋진 선물을 스컬리에게 안겼다.

스컬리는 언제나 야구를 삶의 축소판으로 그렸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1점차예요. 뒤집을 수 있다는거지요. 그러니 어렵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스컬리는 떠났지만 LA의 밤하늘엔 붉은 달이 떠 여전히 '레드 옥토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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