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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힐러리 '건강'보다 트럼프 '발작'이 걱정

프랭크 브루니 / NYT 칼럼니스트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건강이상설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1일 뉴욕의 9·11 테러 추도식 도중 급히 자리를 뜨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69세의 '할머니 후보'가 과연 미국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클린턴의 건강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미리 말해둘 게 있다. 대통령에 뽑히기 위한 선거 캠페인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인정사정없다. 후보가 쓰러져 며칠 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하루에도 몇 차례나 이어지는 연설과 비공식 집회, 브리핑, 선거자금 모금행사, 장거리 비행이 후보를 괴롭힌다. 그뿐인가. 전용버스를 이용한 단거리 이동, 커피숍에서의 작전회의, 유세장에서 군중을 헤치고 나아가는 강행군을 하루 20시간씩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후보의 체력이 아니다. 분별력이다.

클린턴이 자신에 관한 정보는 무엇이든 비밀에 부치려 한다는 건 이미 수없이 확인된 사실이다. 자기방어에 대한 클린턴의 집착은 병적인 수준이다. 미국인들은 클린턴의 이런 자기파괴적 성향을 받아들였거나, 아니면 클린턴을 싫어하기로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다. 영부인 시절 백악관 여행국에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기존 직원들을 아무 이유 없이 쫓아냈다는 의혹('트래블 게이트')부터 최근의 'e메일 스캔들'까지 25년간 클린턴의 행보를 목격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만일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투명하게 처신해왔다면 비밀주의로 철갑을 두른 클린턴은 이미 치명타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트럼프의 비밀주의도 철벽 수준이다. 우선 그는 세금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 트럼프 재단이 무슨 활동을 하고 어떻게 운용되는지 밝히지 않는다. 건강 상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언론에 공개한 건강기록은 성의 없이 작성된 문장 몇 줄이 전부였다. 그 기록을 발급해 준 의사조차 "급하게 만든 것"이라고 인정했을 정도다. 트럼프는 "나는 헤라클레스처럼 힘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증거를 찾기 어렵다.

트럼프는 TV 인터뷰도 스튜디오에 나와 앵커와 얘기하는 대신 전화통화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대개 공항 인근에서 하루 한 통씩 전화인터뷰를 한 뒤 전용기를 타고 귀가해 편안하게 잠자곤 한다. 일반적인 미국 대선후보들의 강행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이오와주에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을 치르면서 현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그 다음날 인근 교회 예배에 끝까지 참석한 게 큰 뉴스가 됐을 정도다.

금발로 물들인 헤어스타일만 보면 짐작하기 힘들겠지만 트럼프의 나이는 70세다. 그가 격렬한 헬스운동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는 골프를 친다. 하지만 유산소 운동량으로 따지면 골프는 주사위 놀이나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그런 만큼 트럼프는 클린턴의 건강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물론 대선전의 양상이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클린턴이 토론을 망쳐 건강이상설은 걱정거리 축에도 들지 못할 만큼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클린턴이 당연히 추가로 공개해야 할 의료기록을 감춰 지지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클린턴이 숨겨온 또 다른 병이 드러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클린턴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음을 결정적으로 입증할 질환은 밝혀진 게 없다.

대선전이라는 지옥의 마라톤에 뛰어든 두 고령 후보가 스트레스로 체력이 저하돼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실이 대선전의 다른 이슈들을 전부 덮을 만큼 중대할까? 클린턴의 과로가 트럼프의 헛소리를 용납할 만큼 큰 일인지 모르겠다. 트럼프의 발작이야말로 더 무섭고 치료도 힘든 난치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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