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쇼크 15년, 일상된 테러
"새 형태 전쟁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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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로부터 10년째였던 2011년 9월 1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우리는 더 강해졌고 알카에다는 패배의 길로 들어섰다”고 선언했다. 그 사이 미국은 두 번의 전쟁을 치르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도 사살했다. 다시 5년. 지난해 11월 테러 현장엔 미국 최고층인 417m 높이의 원월드트레이드센터가 완공됐다.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순간을 목도한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이 탈레반·알카에다의 힘을 빼고 테러의 상처를 씻어내는 동안 테러 집단도 진화했다. 이슬람국가(IS)라는 새 조직이 급부상해 서방세계를 예상치 못한 위기에 빠뜨렸다.
미국 메릴랜드대 글로벌테러리즘데이터베이스(GTD)에 따르면 2014년을 정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테러가 줄었다. 그러나 북미·서유럽에서는 오히려 늘었다. 올해도 벨기에 브뤼셀공항 폭탄 테러(3월), 미국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격 테러(6월), 프랑스 니스 트럭 테러(7월) 등 대형 테러가 잇따랐다.
물리적 피해도 크지만 내상(內傷)은 더 크다. 안보를 우선하면서 금과옥조로 여겨온 서구의 진보적 가치들이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포용했던 이질적 종교·문화가 야기한 테러는 톨레랑스(관용)가 ‘과연 우리의 힘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알렉산더 베츠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지난 2월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 기고에서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가 흐름을 바꾼 ‘게임 체인저’가 됐다”고 진단했다.
파리 테러는 IS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냈다. IS는 미국만을 목표로 삼았던 알카에다와는 달리 시아파 무슬림을 포함한 이교도 전부를 공격했다. 미국·유럽의 한복판에서 개인을 대상으로 한 예측 불가능하고 무차별적인 테러의 신호탄이 파리 테러였다. 중동에 파병하며 자국 영토엔 아무 피해가 없는 ‘비접촉 전쟁’만 치렀던 서구사회는 눈앞의 위협에 비틀거렸다. 안보와 안전이 최우선이 됐고 자유·평등·시민권 같은 가치는 뒷전이 됐다.
지난 1월 독일 보른하임에선 성인 남성 난민의 공공 수영장 출입을 금지했다. 영국 카디프에서는 난민 신청자가 빨간 손목 밴드를 차야 음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자유 침해” “명백한 차별”이라는 비난이 이어졌지만 옹호하는 이도 많았다. 그 목소리는 프랑스의 ‘국민전선(FN)’,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극우정당의 약진으로 드러났다. 미국 사회도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게 됐다. 뉴욕의 주디 장 변호사는 “2001년 이후 이민정책에 반전이 일어나 비자 발급이 엄격해졌다”고 말했다. 취업비자는 그 이후 8만5000개로 동결됐다. 유학생에겐 사회보장번호(SSN) 발급이 중단됐다. 혐오·차별 발언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후보가 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스스로 옥죄는 것도 감수하고 있다. 유럽 주요 도시 거리마다 무장경찰이 배치되고 공연장·경기장에선 철저히 검색한다. 독일은 징병제도 논의 중이다. 프랑스·스페인 등에서 테러방지법 형량이 높아졌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미국 샌버너디노 테러의 배후를 밝히기 위해 미 연방수사국(FBI)이 사살된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 해제를 애플에 요구했을 때 불붙은 ‘국가안보 vs 개인정보 보호’ 공방도 벌어졌다.
벨기에 싱크탱크 카네기유럽의 수석 연구원 주디 뎀시는 지난 3월 보고서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가치를 전복시키려는 자들과의 전쟁”이라고 정의했다. “테러리스트의 공격 대상은 열린 사회와 관용이라는 진보적 가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테러 집단은 목적을 일부 달성했다. 서구사회가 감시·통제를 확대하고 공권력 비대화를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가치를 깎아내리는 모순에 빠져든 것이다. 지난 3월 브뤼셀 테러 직후 유럽의회 엘마 브록 외교위원장은 이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뉴욕·런던=이상렬·고정애 특파원
서울=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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