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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맥주 60만 병 "너무 쓰다"…한인업자 "하이트진로 본사가 유통권 뺏았다"

"버리지도, 팔 수도, 공짜로 줄 수도 없어"
보관만 했던 술, 창고밖으로 '사실상 폐기'
"제품은 처리해 줘야 하지 않나"…끝내 눈물

30일 오전 10시 LA에서 남쪽으로 12마일 떨어진 창고 지대.

'하이트USA(대표 이덕)'에서 지게차가 창고 안팎을 분주히 오가고 있다. 창고 안에 보관하던 참이슬 소주와 하이트 맥주를 꺼내 땡볕이 내리쬐는 창고 밖 건물 외벽 앞에 쌓는 작업이 한창이다.

소주와 맥주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이덕(53) 대표에 따르면 이날 창고밖으로 내놓는 술은 40피트짜리 컨테이너 30개 분량으로 60만 병에 달한다. 하이트진로의 미주 전역 연간 소비량의 1/10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소매가로는 90만 달러를 호가한다.

술을 창고 밖에 쌓아놓으면 변질돼 상한다. 다른 주류도 아니고 국민 소주, 국민 맥주로 불리는 대한민국 대표 술들이 버려지는 배경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정이 있다.

현재 하이트진로의 미주법인인 진로아메리카(법인장 임규헌·이하 진로)와 하이트USA는 2년째 소송중이다.

하이트USA는 2003년 이 대표가 설립한 개인회사로 진로 측과 유통 계약을 맺고 맥주는 북미 전역, 소주는 가주 등 7개주에 단독 배급해왔다.

그러던 2014년 진로 측은 하이트USA를 상대로 돌연 유통계약 해지 소송을 제기한다. 이 대표가 뇌물 공여, 협박 등 사기를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내게서 유통권을 빼앗기 위한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맞소송을 제기해 현재까지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소송 때문에 이 대표는 하이트진로의 모든 주류를 유통할 수 없게됐다. 문제는 창고에 쌓인 재고였다.

이 대표는 재고를 처분하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다른 판매처에 팔 수 없었다. 계약과 소송 때문이다. 공짜로 나눠줄까 생각했는데 불법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다. 연방법상 모든 주류는 허가 받은 폐기처리회사에 비싼 수수료를 주고 넘겨야 한다.

이 대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하이트 진로는 내 자식 같은 제품이라 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97년 하이트진로 전신인 조선맥주 LA지점장으로 발령와서 거의 30년을 '하이트맨'으로 살았다.

결국 올해초 하이트진로측에 싼값에 넘기겠다고 제안했지만 하이트진로측은 묵묵무답이었다.

그 사이 그는 먹고 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식품과 다른 주류를 지난달 1일부터 유통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창고에 쌓인 하이트진로 재고 때문에 새 물건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다. 이날 울며겨자먹기로 60만 병의 술을 사실상 폐기하게된 배경이다.

하이트진로측은 재고 물량 구입을 거부한 배경에 대해 "변호사와 상의하라"고 했다. 소송을 맡은 퀸 임마누엘 로펌의 윌 맥키넌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소송중인 사안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소송은 소송이고, 제품은 제품 아니냐"면서 "자식 같은 자사 제품을 어떻게 이렇게 외면하고 버릴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그의 억울함은 역설적으로 하이트 진로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97년 당시 조선맥주 LA지점의 연매출은 1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의 노력으로 2015년 연매출은 2000만 달러로 껑충뛰었다. 18년간 200배 성장시킨 셈이다.

그동안 이 대표는 맨발로 발품을 팔며 한집 한집 업소에 세일즈를 했다. 또, 하이트 맥주 병뚜껑을 남몰래 거리에 박고 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이 대표는 "광고비가 없어 그렇게 해서라도 하이트 맥주를 알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이트 맥주와 진로 소주가 미국시장에 자리잡은 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한인들이 사랑해주신 덕분"이라면서 "한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하이트진로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게 하이트는 목숨과 같다. 지난 30년간 가족 말고는 인간 이덕에게 하이트 밖에 없었다"면서 "비록 소송중이지만 난 아직도 하이트를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해병대 출신의 강한 남자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이트진로와 헤어진 그는 지금 '헝그리 강냉이'를 판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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