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점봉 기자의 타임머신]리우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남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미국팀에 완승
시카고에도 양궁 선수 출신-강문희,정동린씨 거주
한국 양궁의 대부 고 석봉근씨, 강문희씨의 고모부로 밝혀져

리우 올림픽에서 남자 양궁 단체전 첫 금메달이 나왔다. 시카고에도 양궁 팬들이 많아 주말에 열린 한국 남녀 양궁 단체전의 값진 우승을 축하했다.
남자 양궁 경기를 지켜 본 미주 육상협회장 강문희씨는 1962년도부터 고 석봉근 고모부로부터 양궁을 지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첫 금메달에 환호했다.
시카고 지역에는 양궁에서 활약한 강문희씨를 비롯 양궁협회에서 사무총장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 정동린씨가 있다.

한국에 양궁이 도입된 것은 1959년 당시 체육교사이던 고 석봉근 선생이 서울 중앙시장 부근 한 고물상에서 우연히 양궁을 발견해 구입한 후 양궁의 보급을 모색하게 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이 후 1962년 미군 에로트 중령이 장충단공원 석호정에서 최초의 양궁 시범을 보였다. 그 당시를 회상하는 강문희 회장은 "중학교 2학년 때 고모부인 고 석봉근씨를 쫓아 다니면서 뚝섬이나 한강변에서 고모부가로부터 직접 활 쏘는 것을 배우던 것이 생각난다"면서 그 후 광운전자 고등학교에서 양궁부를 창설하고 약 5년간 활을 쏘며 연습한 경험담을 들려준다.

1963년부터는 국궁대회에서 양궁경기가 시범종목으로 실시되었다. 한국은 1963년 국제양궁연맹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국제 스포츠계에 공식적인 한국양궁의 출범을 알리게 되었다. 1966년에는 한국에서 최초로 양궁강습회가 열렸으며 전국 남, 여 양궁종별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강문희 회장은 "광운전자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양궁부에서 활약했고 군대 시절, 1967년도에 양궁 대회 일반부에 출전해 우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 양궁은 1970년대부터 획기적인 발전의 기회를 맞았는데 당시 안보체육의 강화로 남학생은 태권도, 여학생은 양궁을 장려하여 양궁의 저변확대가 시작되었다고 전했다.
강문희씨가 미국으로 온 1974년에는 최초로 한.일 친선 양궁경기가 열렸으며 제3회 전국소년 체육대회에 양궁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는 "리우 올림픽에서 양궁 개인전이 곧 열리는데 여자팀은 물론 남자팀이 화이팅해서 또 다른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점봉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