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맥 세상] '약'을 향한 모태신앙급 믿음
이원영/편집디지털국장
보통사람들이 약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느낌은 일종의 '모태신앙'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유아기 때부터 각종 약과 가까이 합니다. 이거 먹어야 낫는다, 이거 먹어야 안 아프다, 하면서 귀에 박히도록 약의 찬사를 듣게 됩니다. 성인이 되기까지 약 먹으라는 부모·약사·의사의 말을 듣습니다. 약 좋다는 수많은 광고를 접합니다. 무슨무슨 질병에 효과적이라는 언론의 보도를 보고 듣습니다. 이렇듯 보통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약에 대한 이미지는 거의 맹종 수준입니다. 간혹 약에 관한 부정적인 정보를 접하더라도 어려운 데다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약에 대한 '믿음'이 바뀌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약을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쌓아놓고 먹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은 것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닐 듯합니다.
자, 그렇다면 한 번 이런 말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불량 제약회사(Bad Pharma)'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국의 의사인 벤 골드에이커가 쓴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책은 제약회사들이 약을 팔아먹기 위해 어떤 부도덕한 짓을 벌이고 있는지 생생하게 고발합니다. 그리고 제약회사에 유리한 면만 부각시키고 부작용은 숨기는 임상시험은 물론이고, 각종 학술지에 대필 저술가를 동원해 약을 홍보하고,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의사들이 이 약을 처방하면서 환자와 의사가 모두 제약회사의 속임수에 놀아나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약을 팔 수 있는 오만 가지 기막힌 상술' 챕터를 보면 기가 막힌 내용들로 꽉 차있습니다. 과거에는 병도 아니었던 것을 병이라고 선전하고,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약을 팔아먹는 수법은 고전입니다.
제약회사들은 자기회사의 약을 의사들이 처방하도록 온갖 방법으로 마케팅 합니다. 판촉 사원을 통해 의사들에게 각종 향응을 베푸는 것은 일반화된 수법입니다. 평균적으로 제약회사들은 연구개발비의 두 배에 해당하는 돈을 마케팅에 씁니다. 그 엄청난 돈은 결국 약값에 고스란히 반영돼 환자와 납세자의 부담으로 옮겨집니다.
제약회사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들에게도 약을 함부로 처방하고 남용케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의사와 약에 속지 않는 법'을 쓴 일본의사 미요시 모토하루는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사는 환자에게 올바른 말을 해야 하지만 (약이나 검사나 수술을 강요하는) 협박을 하지 않으면 병원 경영이 불가능하다. 생활습관이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30분 상담하면 병원 경영을 위한 보험료를 받을 수 없다. 결국 쓸데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 없이 불필요한 검사를 하고 약을 처방하고 진료시간을 짧게 한다."
이것이 숨길 수 없는 현대 의료계의 현실입니다.
약은 증상을 없애줄 수는 있어도 원인치료는 할 수 없습니다. 질병을 야기한 원인을 없애야 근원치료가 가능한데 그것은 생활습관과 환경의 개선이 필수적입니다. 약을 장기복용할수록 부작용의 위험성은 높아집니다.
의사엔 세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검사와 약을 먹이며 돈벌이에 혈안이 된 나쁜 의사, 공부 안 하는 무식한 의사, 지식도 많고 약보다는 환자 스스로 건강을 되찾도록 지도하는 좋은 의사입니다. 지금도 약과 의사에 대한 모태신앙급 믿음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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