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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김 은 자 / 시인

K 탤런트가 자살을 했다. 친지들은 '힘든 줄 알면서도 찾아가지 못했다'라며 눈물을 떨궜다. 그럴 때면 장례식에 찾아온 동료 연예인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죽을 정도로 힘들었으면 말하지 그랬느냐고. 언젠가 한 번은 연락이 왔는데 만나지 못했노라고. 자신의 일이 바쁘고 중요해도 죽음 앞에 선 생명만 할까? 친구를 잃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모습은 일에 바빠서 이웃의 아픔에 귀기울이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소설 한 편이 생각난다. 거기서도 그랬다. 자신은 성공한 변호사로 잘 나가고 있을 때 여동생이 이혼을 한다. 슬픔에 잠긴 동생은 오빠에게 결혼 생활이 어땠는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자기한테 와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나 법학대학원에서 일주일 수업을 빼먹는 것은 한 학기를 통째로 빼먹는 것만큼 치명적이라는 생각에 오빠는 동생에게 가지 못한다.

두 번째 결혼마저 깨졌을 때 동생은 짧지만 훨씬 비참한 편지를 보내온다. 다시는 결혼이라는 회전목마에 오르지 않겠다고. 결혼은 족쇄라고. 추신은 '오빠, 나에게 와 줄 수 있어? 오랫동안 못 본 것 같은데'였다. 이번에도 그는 가고 싶지만 말단이라서 일을 접고 가면 돌아와서 만회하는 데 일 년은 걸릴 것 같아 가지 못한다.

소식이 뜸해지고 크리스마스 카드와 생일 카드가 와도 변호사 일이 바빠 답장은 아내가 대신해 준다. 얼마 후, 동생이 죽기 2주 전의 소인이 찍혀 있는 편지를 받는다. 동생이 보험회사 빌딩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기 전 쓴 편지였다. 어릴 적 동생은 그와 함께 마흔세 개의 사다리를 올라 높은 건초더미에 뛰어내리다가 마지막 단 사다리가 부러져 다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린 동생은 겁없이 21m 되는 곳을 뛰어내렸는데 이유를 이렇게 말했었다. "내 오빠니까, 오빠가 지켜 줄 거라고 믿었어."

죽기 전 오빠에게 보낸 동생의 마지막 편지는 가슴이 저리다.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는 건데… 오빠가 건초더미를 쌓기 전에 사다리의 마지막 단이 부러져 버렸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이건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 '사다리의 마지막 단' 줄거리다. 소설 속에는 후회한다는 말이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후회가 짙게 깔려 있다. 이 소설은 그의 대부분 공포소설과는 너무도 다르고 서정성이 느껴져 스티븐 킹 소설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험상궃은 얼굴에서 비단결 같은 마음씨를 본 것 같다고 할까?

누군가 또 목숨을 끊었다. 열심히 사는 동안 누군가는 나를 필요로 한다. 고독에 몸부림치다가 급기야는 최후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 사다리의 마지막 단에서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과연 하던 일을 내던지고 달려갈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리라.

스티븐 킹의 문학성은 대중성을 이유로 도마 위에 올랐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를 TS 엘리엇, 돌킨, 에드거 앨런 포, 세익스피어의 전통을 잇는 작가라고 부른다. 단편소설 한 편으로 누군가 목숨을 끊은 것이 나의 무심함 때문이라고 뭉클하게 만든 것을 보면 이야기 힘이 대단한 소설가다. 알 것 같다. 왜 그를 대중소설과 본격소설 사이의 경계를 해체한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표적 작가라고 부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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