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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a! 스페인' 차 렌트, 아파트 숙식…좌충우돌 가족 여행기<하>

콜럼버스가 잠든 세비야 대성당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유언을 따르느라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네 왕들이 그의 관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그 앞으로 고딕 양식의 웅장하고도 장엄한 세비야 대성당의 내부가 펼쳐져 있다.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1506년, 착공 105년 만에 지어진 세비야 관광의 핵심이다. 무려 80년 동안 제작된 높이 27m, 폭 18m 크기의 화려한 중앙 제단은 세계 최대 규모이다. 몇 년 전 들렀던 화려한 르네상스풍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는 또 다른 감동이다. 비스듬한 경사로를 따라 오를 수 있는 종탑, 히랄다 타워는 12세기 이슬람 사원의 한 부분이다.

오렌지 정원으로 빠져 나와 알함브라 궁전의 나스르 궁전을 모티브로 한 자매궁정격인 알카사르까지 들렀더니, 덥고 허기가 진다. 골목 마켓에서 빵과 과일을 사서 아파트로 돌아오며 좁은 골목에 주차된 차를 다시금 보게 된다. 어제 아침, 좁고 어두운 그라나다의 주차장을 빠져 나오다가 긁힌 뒤 펜더를 바라보니 절로 한숨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드라이브는 환상 그 자체였다. 120m 높이의 타호 협곡 위에 세워진 누에보 다리가 유명한 론다를 거쳐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안달루시아 지평선에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해바라기밭 사이를 달렸었다.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모두들 잠깐 잠이 들었다. 현지인들처럼 씨에스타(낮잠)를 즐긴 것. 오후에는 도시마다 있는 스페인 광장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으로 나섰다. 1929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의 본부로 지어진 건물은 한국의 여러 광고 배경으로도 쓰였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답다. 다시 이리저리 GPS가 이끄는 대로 전세계에서 가장 큰 목재 건축물로 이름 높은 메트로폴 파라솔에 이르렀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발렌시아의 예술ㆍ과학단지처럼 이 건축물도 스페인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플라멩코를 보지 못해 아쉽지만 다들 지쳐서 숙소로 돌아온다.

프라도에서 탄식하다

어제도 세비야를 떠나 마드리드까지 여섯 시간 거리를 달렸다. 중간에 개스도 채우고 장도 보고, 왁스를 사서 차 긁힌 곳을 닦아내고 하느라 하루가 걸렸다. 왁스로 닦아낸 자리는 깨끗해졌지만 살짝 들어간 곳은 여전히 눈에 띈다. 무사히 넘어가기를 기대해 보지만 찜찜하기 그지없다.

내일은 세고비아를 다녀와야 하고 모레는 돌아가야 하니 자투리 시간도 허투로 보낼 수 없다. 벌써 오후 6시, 숙소보다 세계 3대 미술관의 반열에 올라 있는 프라도 미술관으로 달린다. 문을 닫는 두 시간 전부터는 무료 입장이다. 입구의 고야 동상을 일별하고 한글 오디오 가이드를 사서 프라도의 안주인 '마하(마야)'부인을 만나러 간다.

한글 안내도를 따라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는데,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스, 라파엘로의 대작들이 자꾸만 발길을 붙잡는다. 드디어 수많은 관람객이 멈춰 선 어느 방에 들어섰다. 가로 190cm, 세로 95cm의 등신대의 실물 크기로 그려진 두 그림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고야의'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 역시 예술작품이란 원작을 보기 전에는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여기서 또 확인한다. 어느새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딸을 앞세워 헤매다가 마침내 찾던 그림 앞에 섰다. 세로가 199cm, 가로는 무려 379cm의 대작이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트로이 왕자에게 제일 아름다운 여신에게 사과를 주게 하는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이다. 폐관 시간은 다가오는데 가슴은 벌렁거리고, 발길은 떨어지지 않는다.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아담과 이브'… 아, 속절없는 시간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2천년 현역, 세고비아 수도교

아침부터 잔뜩 흐리더니 급기야 빗방울이 거세다. 2000년 전 로마제국에 의해 지어진 뒤 아직까지도 세고비아의 거리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고 있는 수도교 앞에 섰다. 견고하고 상쾌한 체감을 보여주는 교각, 우아하게 반복되는 아치와 검은 화강암이 주는 묵직한 질감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모든 성당 중의 여왕' 세고비아 대성당을 돌아 주차한 골목에 돌아오니, 80유로짜리 주차 벌금 티켓이 떡 하니 붙어있다. 주차라인 안에다 제대로 주차한데다 주위에 아무런 장치나 표지판이 없다. 아이들을 앞세워 세고비아 시청으로 향했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런데, 너무나 싱겁다. 주차티켓을 본 시청 직원이 외국인 티켓은 벌금 부과 과정이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들어서 아예 절차를 밟지 않는단다. 컴퓨터 상에도 올라 있지 않으니, 걱정 말고 여행이나 즐기란다.

디즈니의 만화 영화 '백설공주'의 실제 모티브가 된 알카사르를 거쳐 마드리드로 향하는데, 카스티야 평원에 오후의 햇살이 풍성하다. 아, 어쩌면 좋으냐.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리워짐을.

전체 여행 비용

ㆍ항공료(4인):$4254

ㆍ숙박비(8일):$848

ㆍ렌터카(5일):$311

ㆍ주유비:$179

ㆍ식사, 부식비:$311

ㆍ입장료:$172

ㆍ주차, 전철, 택시비, 통행료 등:$235

=10일간 전체 경비:$6310


백종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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