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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드론이 올 때까지는…

김준혜

일주일 전쯤의 일이다. 누군들 안 그러겠느냐마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495를 어쩔 수 없이 탔다. 역시 한결같이 막히는 도로, 1cm도 움직이지 않는 우리 쪽 차선에서 E-Z 패스 간판 아래로 쌩쌩 달리는 유료도로의 흐름을 무심히 바라보다 은근히 치미는 부아를 이제는 고백해야겠다.

원래 나는 남의 집 정원과 수영장을 탐냈던 적 없이 살아왔다. 혹 지나치는 부러움이 있을 수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그건 울타리 넘어 남의 집 이야기여서 이렇다 할 시샘과 고까움 없이 어지간하게 살아왔음을 감사드린다.
 
또 돌아보면 내가 살면서 언제나 길은 그런대로 공평해서 내가 가는 길이 유료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공평히 유료였고, 그것이 무료라면 균등히 무료였다. 그래서 길은 어디까지나 공적이었고 균등했던 이유로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마저도 옛이야기가 된 것 같아 불길하다.

민주와 공화가 없던 시절에도 대체로 길은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의 사유재산으로부터 독립되어 유지되어왔다. 또 길은 한정된 사회간접 자본으로 어쩌다 차선 하나를 더 늘리려 해도 족히 20년의 준비와 시공 그에 따른 교통혼잡 등 사회적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길은 공동의 자산이며 선대가 과거 순혈의 세금으로 일구어 놓았고 우리가 사용 유지하다 자동차가 없어지고 드론이 활개치기 전까지는 아마도 왜소한대로 후대에 남겨줄 유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우리의 양보와 희생 위에서 만들어진 길에 줄 하나를 그어 돈을 받는 공권력이 있다 하자. 푼돈이 겁나지 않는 이들은 글자 그대로 급행료를 내고 먼저 도착해 이른 저녁을 먹는 동안 나는 일상의 좌절과 출·퇴근의 무게를 한숨과 식은 커피로 달래고, 우리 아이들은 쓸쓸한 밥상머리에서 가장을 기다린다.
 
과거 다이아몬드 차선이라 불리는 HOV도 취지가 좋아 이해했고 막히면 막히는 대로 함께 맞는 비라 여겨 고까운 심정이 없었다. 극대화된 산업사회와 효용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도착하여 욕심껏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리하여 고단한 몸을 저택에서 먼저 쉬겠다는걸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그들이 누린 속도가 일반의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어쩌면 시대적으로 잘못 태어난 그런 제도이거나 어쩔 수 없이 잘못 구현된 제도라도 대가가 너무 낮게 책정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비행기에도 비즈니스석과 그보다 더한 것이 있지만, 고작 4.75달러에 그 자리를 넘기지는 않는다. 이코노미석보다 무려 3배 이상 더 치러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비행기 안에서의 누림은 달라도 도착시각은 같아 참을 만했다. 오히려 똑같은 노선에 나보다 3배 이상 더 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알뜰과 현명함에 사뭇 기분 좋았던 기억도 있었다.
 
쇼핑몰에 가도 발렛파킹이 있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차할 공간이 없다거나 너무 불편하여 입이 나온 적은 없었다. 그래서 잘난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서 수용 가능했다. 그런데 그것도 나이 든 중년의 시기 어린 타박이었을까? 함께 사는 세상에서 E-Z 패스는 겪을 때마다 찜찜하고 받아들이는 심기가 사뭇 달랐다. 인내와 관용을 넘어 나만의 유별난 감상일는지 모르겠다.
 
더욱 불길한 것은 이처럼 효용과 실용을 앞세운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내는 소득세를 기준으로 하여 투표권을 부여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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