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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상의 보석이야기]세계 8대 불가사의에 꼽히는 호박의 방

한국군에 비친 카투사는 편한 곳에서 군기 없이 설렁 설렁 근무하는 한량 같은 존재로 생각되지만 미군의 기준에선 카투사는 너무도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하는 불쌍한 존재였다. 똑같은 근무조건임에도 월급부터 확연히 차이가 있어 일반 미군 사병과 카투사의 월급은 50배에서 100배에 이를만큼 차이가 컸고 휴가나 그 밖의 혜택에서도 월등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내에 있는 대부분의 유료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고 카투사 처우 개선의 일환으로 미군에겐 없는 한 달에 한 번 3일의 포상 휴가를 가곤 했다.

가끔 미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어 한국 실정을 모르는 신병들은 우리가 받는 이런 혜택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지만 속사정을 알고 나면 그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한 나라 두 개의 문화권에서 생활하다 보니 한국군의 잣대론 카투사는 엉터리 군인이지만 미군의 눈에는 똑같이 일하고도 항상 배고픈 용병인 것이다.

평일에는 일과의 종료를 알리는 오후 4시 반 점호가 끝나면 우리는 통금시간인 밤 12시 전까지 영내 외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미군들은 일이 끝나면 영외에 있는 바나 클럽에 가서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지만 가진 것 없는 카투사는 삼삼오오 모여서 운동을 하거나 영화관을 몰려다녔다. 그러다 월급 3-4천 원이라도 받는 날이면 우리는 의정부로 나가 회식도 하고 당구도 치면서 몇 시간 만에 한 달치 월급을 몽당 탕진하고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지급되는 양말, 내복, 치약, 비누 등의 보급품을 아껴 쓰며 양키시장에 내 다 팔았고 생활에 도움이 되면 부업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작대기 두 개, 일병이 되고 나서야 내가 꿈꿔 왔던 중대 행정병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행정병이 되기 위해 창피를 무릅쓰고 여고생들에 둘러 싸여 타자기를 두들기며 꿈을 키워 왔는데 우여곡절 끝에 꿈은 현실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과를 마치고 중대 본부를 나서려 하는데 평소에 나에게 다정이 인사를 건넸던 흑인 상병이 나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 쭈뼛쭈뼛 내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뜬구름 잡는 얘기로 말을 시작하더니 이윽고 나에게 한가지 부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연애편지를 대필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태어나서 영어만 쓰고 살아온 미국인이 평생 한국말만 하고 산 나에게 영어로 연애편지를 부탁하니 나는 한동안 어이가 없어 멍하니 그를 쳐다만 보았다. 할 말을 잃어 멍 때리는 내 모습을 보고 그는 내가 편지에 대한 대가를 기다리는 줄 알고 편지를 써 주면 맥주 한 박스와 말보로 담배 한 보루를 선물로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나는 선물에 눈이 어두워 앞뒤 생각 않고 오케이를 해 버렸다.

그는 한국에 오기전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 연락이 뜸해지자 관계가 소원해졌고 이윽고 결별을 통보하는 편지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내가 중대 행정병이라 자기보다 당연히 영어를 잘 쓸 거라 생각하고 부탁을 했지만 나는 타자를 잘 치는 거지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군대는 문서 양식이 정해져 있어 이미 만들어진 틀안에 정보만 입력해 뽑아내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별로 필요치 않았다.

오케이를 하고 방에 들어오니 마음은 더없이 착잡해 왔다. 한국말로도 한번 써 본 적이 없는 연애편지를, 그것도 영어로 뭘 어떻게 써 줘야 하는 건지 머리에선 이미 쥐가 나기 시작했다. 밤새 뒤척이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다음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캠프 안에 있는 도서관을 찾았고, 사서에게 연애편지 쓰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리자 그는 주저 없이 몇 권의 책을 책장에서 뽑아다 주었고 나는 그것들을 본 순간 오줌 쌀 것 같은 전율을 온몸으로 느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편지쓰는법’, ’로맨틱한 편지쓰기’, '연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백가지 문장’ 등 내가 찾던 바로 그것들이 내 앞에 있었다.

학교 다니며 연마한 짜깁기 실력으로 나는 한편의 위대한 서사시를 완성했고 그것을 그에게 갖다 주었다. 내가 써 준 편지가 애인에게 통했던지 그 후로도 나는 그의 편지를 대필해 주었고 입소문을 타고 더 많은 의뢰인을 얻을 수 있었다. 맥주 한 박스와 담배 한 보루는 공식 가격이 되었고 나는 제대할 때까지 줄곧 이 일을 부업 삼아 맥주와 담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보석상식 51: THE AMBER ROOM(호박의 방)



영어로는 AMBER, 한국어로는 호박으로 불리는 엠버는 나무의 송진이 오랜 세월을 거쳐 화석화되면서 만들어진 것인데 진주와 더불어 광물로 구성되어 있지 않는 유일한 보석입니다. 약 5천만 년전의 지질시대에서 형성 된 호박은 인류가 선사시대부터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보석 중의 하나입니다. 호박의 대표적인 산지는 발틱해 주변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노리게, 비녀, 마고자 단추 등 귀족과 부자들의 장식구를 만드는데 사용됐습니다.

호박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으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 위치한 호박의 방(THE AMBER ROOM)이며 세계 8대 불가사의에 꼽히는 것이었습니다.

호박의 방은 원래 러시아가 아닌 독일에 있었지만 호박의 방에 눈독을 들인 러시아 황제 표도르 1세에 의해 러시아 근위대와 호박의 방을 맞 교환하는 호박의 방 외교를 펼친 끝에 러시아의 겨울궁전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이후 세계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명령으로 독일 나치에 의해 약탈 당했으며 그 후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부단한 노력에도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되자 1979년부터 호박의 방을 복원하기 시작했지만 자금난으로 일시 중단해야만 하는 고비를 겪게 됩니다. 그 후로 독일 기업의 도움을 받아 50명의 전문가들에 의해 마침내 20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창건 300주년 일에 마쳐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이 호박방은 50만 개의 크고 작은 호박을 잘라 퍼즐 조각을 맞추듯 만들어졌으며 최근 들어 중국인의 호박 사랑으로 호박 가격은 급상승했으며, 더불어 이 호박방의 가치 또한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 되었습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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