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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왜 하필 정치판인가

나광수/수필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의 대선에 나설 뜻을 비추자 기쁘기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의 반듯한 이미지가 정치 참여로 망가질까 걱정해서다.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성공했고 국민의 존경을 받아오던 인사들이 정치판에서 망가진 게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신화로 불리던 정주영씨는 어느 날 갑자기 정계에 진출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권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그후 회사가 세무조사를 받는 등 사업의 위축을 가져왔고 "정치와 사업은 다르다"라는 말을 남기고 정치를 떠났다.

깨끗한 이미지의 유명 경제학 교수는 주위의 부추김을 받아 정계에 나섰다가 별 신통한 결과도 못 남기고 제자들과 국민의 신망만 잃었다. 독재정권 시절 독재에 대항해 할 말을 하다가 옥고도 몇 번 치렀던 모 교수는 현실정치에 참여해 정치판을 바꿔보겠다고 힘쓰다가 쌓아온 명성에 금만가고 그 뒤 뚜렷한 활동을 못하고 있다. 그는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의 대통령으로도 불린다. 그런 명예로운 일을 하는 분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국가 대통합을 이뤄 통일을 달성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거창한 꿈의 이면에는, 혹시 지금의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국민의 인기와 여당에 뚜렷한 대권주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그를 유혹한 것은 아닐까?

더욱이 야권을 둘러봐도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는 대권주자가 확실히 부상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를 자극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유엔 사무총장이란 직위는 권위만 있지 실질적이 권력이 없는 관계로, 대권주자라면 국민에게 그의 능력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여러 개다. 국민에게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경제를 활성화시켜 민생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쟁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권 과정에서 그의 반듯한 모습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점이 우려가 된다. 우선 당내 경선을 치르자면 상대를 꺾어야 할 것이고 꺾기 위해서는 점잖은 방법만으로는 안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고도 대선에서 처절한 싸움이 예상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도 대통령이 안 되면 그 뒤는 어떻게 될까? 남는 건 상처난 명예와 좁아질 운신의 폭이 란 생각이 든다.

굳이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 후에 경험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본다. 기아문제, 인권문제, 난민구호, 평화유지, 기후변화문제 등 인도주의적 문제에 힘을 쏟을 수 있을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전임 코피 아난은 정치적 중립을 갖고 있고 국제적 신망을 얻는 전직 국가수반, 국제기구 수장, 평화, 인권운동가들과 함께 활발히 인도주의적 활동을 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근현대의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존경할 만한 인물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점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괜찮은 인물이다 하면 정치에 몸담아 구겨지는 모습을 여럿 보았다. 한국인 최초이며, 동아시아 최초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모습을 근심 어린 눈으로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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