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오월의 아사코
김준혜
뉴스타 부동산
나만의 경우인지 모르겠으나 봉숭아 학당의 맹구처럼 나는 늘 신데릴라와 콩쥐 팥쥐의 이야기를 구별할 줄 모른다. 아이가 어렸을 적 잠자리에서 들려주던 이야기도 콩쥐 팥쥐로 시작했다가도 곧잘 신데릴라로 끝나곤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나에게는 그런 경우가 또 하나 있는데 거문고 아이라는 아호를 가지고 있는 금아 피천득 선생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인연이라는 수필집에 나오는 아사코 이야기와 역시 같은 책에 연작으로 수록된 ‘오월’이 그러한데 이야기의 줄거리로서는 아사코를 그리고 그 배경으로는 바로 ‘오월’을 의도적으로 혼동하는 그런 경우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선생의 또 다른 작품 ‘만년’이라는 수필까지 버무려져 마치 한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일까? 때에 따라서는 미당의 시어까지 동원되는 등, 일관이 없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하나로 이어지는 특유의 허구적 효과를 남기게 되었다
신록의 계절 오월은 늘 이파리 속에서 빛나는 햇빛처럼 일렁이면서도 학창시절에 읽었던 선생의 수필 ‘ 너무도 나를 압도하여 감상과 느낌을 글로써 표현하는데 늘 실패하곤 했다. 그렇지만 재주 없는 나도 이제 오마주라는 장르에 의지해 그동안 주눅 들었던 나만의 오월에 대한 감상을 용서가 된다면 선생의 재주에 살짝 얹어 우리의 아사코를 기억해봐야겠다.
“오월은 찬물 방울 튕기며 금시라도 세수를 한 애띤 얼굴, 앵두와 딸기의 달이며, 낯달 같은 모란의 달이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고 여유롭다. 그 앙징한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초록이 되고 초록은 어느덧 지쳐 단풍이 될 것이다. <…>”
이제 이 부분에서 이야기의 줄거리인 아사코의 이야기가 드디어 내 기억 속에서 회상의 장면으로 전환된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의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그 동안 나는 초등학교 일학년 같은 예쁜 여자아이를 보면 늘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중략>
이제 나이가 들어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더러 내세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 본 적이 있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참으로 다행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이이는 진실로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신록의 이파리 속에서 빛나는 햇빛처럼 일렁이면서도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고 여유롭다. 그 앙징한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초록이 되고 초록은 어느덧 지쳐 단풍이 될 것이다. 원숙한 여인이 그러하듯 녹음이 우거지고 이렇듯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이려니 그래도 우리가 그 오월 속에 있나니 내 이제 나이를 세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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