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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김치찌개는 삶을 닮았다

김영애/수필가

일상이 녹록지 않으면 김치찌개가 생각난다. 답답한 현실을 화끈하게 뚫고 싶은 날에는 더욱 간절해진다. 뜨겁고 매운 김치찌개에 빠져 한동안 땀을 흘리고 나면, 막혔던 영혼이 열리는 것 같다. 아마도 김치찌개의 칼칼한 맛이 혼을 깨우고 카타르시스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찌뿌둥한 하늘 때문인지 하루가 무겁다. 이런 날은 신나는 음악 속에 영혼을 승화시킬 김치찌개를 만들어야겠다. 김치와 돼지고기에 준비한 육수와 다진 마늘, 맛술을 넣고 끓이다 두부와 대파를 얹어 살짝 익혀낸다.

드디어 오늘의 최고 작품인 '김치찌개'가 탄생됐다. 무럭무럭 김이 오르는 따뜻한 밥 위에 완성된 김치 한 젓가락을 얹어 입에 넣는다. 혀에 착착 감기는 감칠맛이며 매콤하게 톡 쏘는 맛이 환상적이다. 잘 익은 김치찌개 하나에 열 반찬이 부럽지 않다. 이제 김치찌개가 밥도둑으로 변하여 나의 혼을 온통 사로잡는다 해도 오늘 오후는 마냥 행복할 것이다.

식물성인 김치와 동물성인 돼지고기가 궁합을 맞춰 만들어진 얼큰한 김치찌개는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동물적인 삶과, 주위 환경에 그대로 순응하는 식물적인 삶 모두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김치찌개를 먹고 나면 왠지 북극곰 같은 기운이 불끈 솟고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있는 그대로의 하루를 수용할 수 있는 것 같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김치찌개는 자신을 몇 번이나 죽였을까. 배추가 잘라지며 온전했던 몸이 반으로 나누어졌는가 하면, 소금에 절여지며 자신의 존재가 증발되었다. 얼마 후 무와 젓갈이 삽입되며 배추는 완전히 속을 비워야 했고, 김치로 숙성되며 또 다시 변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김치찌개로 변신하면서 김치의 속성조차 버려야 했고, 내 몸에 들어와 산화되며 더 이상 자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자기를 버릴 줄 알아야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을 온전한 삶이라 했을까.

김치찌개는 삶을 닮았다. 까탈을 부리며 타오르는 불꽃 빛이며, 톡 쏘는 매콤함에 새콤달콤한 맛이 섞여 삶처럼 딱 잘라 정의 내리기가 힘들다. 그래서인가, 김치찌개는 맵고, 달고, 시고, 짠, 혀가 감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맛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삶을 걸으며 느낄 수 있는 인생의 맛 같은 것이다.

삶이란 무엇일까. 짜고 매워 정신없고 힘들다고 온갖 푸념을 다 늘어놓지만 끝내 거기에서 헤쳐 나오지 못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혀끝이 얼얼할 정도로 맵고 자극적이지만 나름대로의 새콤달콤한 맛에 빠져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김치찌개처럼, 삶도 그 맛에 탐닉되고 중독된 채 매순간 몰입하며 걸어가는 것 같다.

여러 가지 맛이 어울려 바글바글 익어야 김치찌개가 제 맛이 되듯, 삶도 세월 속에서 발효되고 숙성되어야 제격일 듯싶다. 여러 번 끓여 낼수록 맛이 깊어지는 김치찌개처럼, 인생도 뜨거운 시련으로 몇 번이고 지글지글 끓이다 보면 그 맛이 숙성되며 익어가는 것은 아닐까.

삶이 편치 않을 때면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진다. 어쩌면 이길 수 없는 삶에 지쳐 그것을 닮은 김치찌개와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이고 싶은 마음에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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