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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상의 보석이야기]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린 영국 왕 에드워드 8세

“엄마, 나 군대가….” 엄마는 뭔가에 얻어맞으신 듯 한동안 멍하니 나를 쳐다보시더니 말을 이으셨다. “너 입영 통지서도 안 나왔는데….” “나 지원했어 카투사에….”

합격 통지서를 받고 당황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기대 없이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그냥 지원해봤는데 카투사 시험에 덜컥 붙어 버렸다. 나는 합격 통지서를 받은지 3개월 만에 논산 훈련소에 입소해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과 2주간의 유격훈련을 마치고, 마지막 4주간의 미군 교육을 받기 위해 평택에 있는 미군부대, 캠프 험프리로 이동해야 했다.

속칭 ‘양키’에게 빌붙어서 편하게 군대 생활할 너희 놈들은 고생 좀 하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6주의 군사훈련은 그 어떤 연대의 훈련보다 더 힘들고 고달팠다.
83년 9월 말에 입대한 논산 훈련소는 훈련이 끝나고 나니,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싸늘한 11월이 되었고 이마에는 이병 작대기 하나가 붙어 있었다.

논산역 플랫폼에는 갓 배출된 신병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머리 부분인 기관차 앞쪽 열차 칸은 최전방에 배치될 신병들을 위한 것이었고 뒤로 갈수록 후방에 배치되는 병력이 탔다. 그리고 각 열차마다 헌병이 앞뒤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전방으로 가는 병력이 탄 열차에는 혹시 모를 탈영에 대비해 헌병들의 경계가 유독 삼엄했다.

초주검이 되어 있는 전방 배치 병력에 비해 맨 뒤쪽에 배치된 카투사 병력이 탄 열차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표어가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다가올 군대 생활에 대한 걱정보다는 미군부대 생활에 대한 기대로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실은 열차는 평택역에 도착했고 우리는 전방으로 이동하는 병력들과 이별해야 했다. 차창 맞은편에 우리를 응시하는 눈동자들은 초조와 부러움으로 뒤섞여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향해 “잘 가라 전우여… 조국 영토 방위를 위해 너희 한 몸 다 바쳐라.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돈단다.” 라고 마음으로 소리쳤다.

우리를 인계받기 위해 온 미군과 카투사 조교는 나름 군기를 잡기 위해 목청도 높이고 얼차려도 주었지만 그전에 우리가 만났던 훈련소의 유격 조교에 비하면 그들은 사관과 신사에 나오는 젠틀맨이었다.

내무반에서 짐 정리를 마치고 우리는 식사를 위해 매스 홀(미군 식당)로 이동했다.
귀동냥해서 듣던 미군 식당을 눈으로 미군 식당을 그 규모는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이었다. 넓은 홀안에 잘 차려진 테이블 위에는 육해공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다양한 종류의 주스와 소다, 각종 육류와 해산물 그리고 태어나 생전 처음 보는 열대 과일 등 최상급 호텔에나 가야 맛볼 수 있는 진수성찬이었다. 지금은 한국도 모든 게 흔하고 풍요롭지만 내가 군대 생활을 하던 80년대 초만 해도 이런 음식들은 보통 사람들이 먹기 힘든 것이었다.

논산 훈련소에선 항상 충분치 못한 배식 탓에 옆 전우에게 돼지비계 한점이라도 더 가면 하루 종일 고기 한점 생각에 밤까지 잠 못 들었다. 그리곤 내일 배식 때는 내게 더 많은 밥과 고기 한점이라도 더 들어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시절이었다. 항상 배고팠던 논산 훈련소 생활이었기에 미군 식당은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나는 제대하는 그날까지 이런 산해진미에 빠져 살 생각을 하니 입가엔 미소가 절로 생겨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양식과 작별 아닌 작별을 해야 했다. 평택 교육대에 입대한지 2주째, 아침을 먹자마자 나는 쏜살같이 식당을 박차고 나와 위 속에 집어넣었던 모든 음식을 토해 내고 말았다. 신토불이라고 했던가…, 역시 우리 몸에는 우리 음식이 최고인가 보다. 평생을 된장과 김치에 익숙한 내 몸이 느끼한 버터에 한계를 느끼고 모든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라면이 그렇게 좋고 귀한 음식이라는 것을. 그 후로 나는 남은 미군 생활을 라면과 봉지 김치로 연명했고 가끔 가사 장학금이 집에서 도착하면 카투사 스낵바에서 김치찌게나 된장찌게로 내 불쌍한 위를 달래야만 했다. (다음에 계속)

보석상식 49: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린 영국 왕 에드워드 8세

갑작스러운 아버지 조지 5세의 죽음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심슨 부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과 미국인인 그녀의 신분 때문에 왕실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고, 결국 왕위를 버리고 사랑을 택하게 되는 세기의 러브 스토리 주인공이 됩니다.

왕위에서 물러난 후 에드워드 8세는 윈저공으로 칭해집니다. 윈저 공이 된 에드워드는 미안한 마음에 심슨 부인에게 평생을 통해 수많은 보석을 선물하게 되고 그는 입버릇처럼 심슨 부인에게 선물한 모든 보석을 심슨 부인 사후 분해해 그녀 외엔 아무도 그 보석들을 가질 수 없게 해 달라고 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애틋함을 보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사후 1987년 심슨 부인이 소유한 214점의 보석들이 경매에 나오게 됩니다. 그중 THREE OSTRICH PLUME DIAMOND BROOCH는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르기 전 왕자의 신분일 때 미래의 부인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것을 두고 경매에서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심슨 부인과 각별한 우정을 나눈 할리우드 여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맞붙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녀와의 우정과 추억이 담긴 이 물건을 찰스 황태자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예상가를 초월하는 고가를 쓰게 되며 낙찰받게 됩니다.

살아생전 둘도 없이 가깝고 친하게 지냈던 심슨 부인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보석에 있어서 만큼은 서로에게 지기 싫어해 상대보다 더 좋은 보석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했다고 합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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