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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용꼬리'<워싱턴주 드래곤테일 피크>올랐네.

재미대한산악연맹 명산순례 동행취재

전국 산악인 26명, 유대강화
70대서 40대까지 '실버등반'


"야, 왼쪽은 버리고 오른쪽으로 올라가"

유동혁(시애틀) 등반대장이 리드를 하고 있는 박상훈씨에게 소리친다. 용의 등비늘처럼 잔뜩 날이 선 9부 능선을 따라 내딛는 걸음걸음이 아슬아슬하다. 왼쪽으로는 빗자루로 쓸어내린듯한 급경사의 하얀 만년설이 천길단애를 이루고 있다. 믿을 것은 오직 한 손에 쥔 피켈과 두 발에 덧씌운 크램폰이 전부다. 심장은 벌렁거리고 다리는 떨리니, 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지경이다.

대원들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멀리 벼랑 끝으로 '드래곤테일 피크(DragonTail Peakㆍ8842ft)'정상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떨어져 있고, 왼쪽 건너편에는 '리틀 안나푸르나'가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발 아래론 아이솔레이션 레이크가 눈에 뒤덮여 눈썹달처럼 가장자리만 옥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 아래로 트랭퀼ㆍ퍼펙션ㆍ인스퍼레이션ㆍ비비안 레이크 등 수많은 호수들이 눈 속에 감춰져 있다. 이름하여 '매혹의 트레일(Enchantment Trail)', 빙하에 깍인 화강암 준봉들 사이로 수정같은 호수들이 발길을 끄는 '알파인 파라다이스'다.



지난주 재미대한산악연맹(회장 허훈도)의 연례 행사인 '제8차 명산순례' 등반에 기자가 동행했다. 매년 연맹의 전국 지부 및 가맹산악회의 회원들이 합동산행을 통해 유대강화와 산악계의 발전을 도모하는 행사다.

2009년 그랜드 티턴(와이오밍)을 시작으로 레이니어(워싱턴)·샤스타(캘리포니아)·팀파노고스(유타)·프레지덴셜 트래버스(뉴햄프셔)·휘트니(캘리포니아)·후드(오리건)에 이어 올해의 대상지는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 캐스케이드 산맥의 드래곤테일이다.

이번 등반대의 참가자는 72세의 명완진(시카고)씨를 비롯해서 71세의 한상기(조지아)·홍종만(뉴욕), 70세 이주익(시카고)씨 등 왕년의 내로라하는 산악계 대선배들이 대거 참여했다. LA·오리건·뉴욕·버지니아·시애틀·시카고 등 원근 각지에서 모인 대원이 모두 26명이다. 최태현 한국지부장도 불원천리 달려왔다.

11일 캠프장에서 회포를 푼 대원들은 이튿날 트레일헤드로 출발했다. 시즌 개방을 며칠 앞둔 터라 예정에 없던 4마일의 비포장 트레일이 더해졌다.

막영장비와 취사도구, 크램폰과 피켈·안전벨트 등 등반장비, 우모복·고어텍스 재킷에다가 사흘치 개인식량까지 짊어지니 40파운드를 훌쩍 넘긴다. 하지만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길 옆으로 활짝 핀 보라색 루핀, 시야를 압도하는 삼나무숲이 잠깐씩 피로를 씻어준다.

배낭 끈이 어깨를 파고들 즈음 드디어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행동식으로 요기를 한 대원들은 3개조로 나뉘어 1시간 간격을 두고 출발했다. 조금 전 지나간 공원 레인저아가씨의 당찬 엄포(?) 때문에서다. 한 그룹은 12명을 넘을 수 없고, 그룹 간 거리도 1시간 차를 두어야 된단다. 트레일의 훼손과 식생보호를 위한 조치라며 이를 어기면 티켓을 끊겠단다.

다시금 4.5마일의 트레일이 시작됐다. 전봇대처럼 수십미터 높이로 쭉쭉 뻗은 삼나무가 이국적인 정취를 안겨주지만 머지않아 이 삼나무가 엄청난 장애물로 다가온다. 강수량이 풍부하니 나무 뿌리가 깊지 않은 데다 강풍이 겹쳐 쓰러지거나 꺽여진 나무들이 수도 없이 트레일을 가로 막고 있다. 밑으로 기어야 하는 림보와 타고 넘어야 하는 허들까지.지리하게 이어지던 트레일은 스튜어트 산으로 가는 길과 나뉘어지는 세갈래 길에 이르렀다. 걷다 쉬다를 반복하던 끝에 드디어 호수 끝자락에 이르렀다. 다시 1시간 동안 호수 가장자리의 암릉을 타고 넘어서야 캠프장에 도착했다. 오후 6시 30분, 아침에 배낭을 멘 지 10시간 만이다. 한참을 다진 눈 위에 텐트를 설치하고 누룽지를 끓이니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다음날 새벽 5시, 냉기와 코골이 소리로 저마다 잠을 설친 대원들이 텐트 밖으로 나선다. 푸르스름한 여명에 수직으로 솟은 봉우리는 이름처럼 섬뜩하고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용꼬리'라니, 설악산의 '용이빨 능선(용아장성)'사촌뻘인가. 하루만에 3000피트 이상 올라야 하고, 어떤 구간은 경사 70도에 육박하는 설벽이니 기가 질린다.

레이니어산을 45번 등정하고, 분화구까지는 100번도 넘게 올랐다는 베테랑 유동혁 등반대장이 나섰다. 누구는 장비가 부실하고, 누구는 경험이 부족하고, 누구는 체력 저하를 이유로 강퇴되거나, 기권해서 16명의 대원이 추려졌다. 일행은 추락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다시 3개조로 나뉘어 북사면의 아스가드 패스로 이어지는 꿀르와(산중턱의 협곡)에 붙었다. 아침해가 캐스케이드 산맥 언저리를 비출 즈음 드디어 패스에 올라서고 보니, 캠프에서 보이지 않던 설사면이 오른쪽으로 또다시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내 이럴 줄 알았다.

12시, 드디어 정상. 몇 사람 설 수도 없는 칼날 능선 저멀리 마운트 레이니어가, 가까이는 스튜어트ㆍ콜척 피크가 손에 잡힐 듯하다. 올랐으니 내려가야 하리, 정상은 다시 누군가의 차지가 될 것이다. 하산길은 언제나 그랬듯이 살 떨리는 순간이다. 유명 산악인 에드 비스처는 말했다. "정상은 선택이지만 살아 돌아오는 건 필수"라고.

드래곤테일 피크

북미 태평양 연안 오리건과 위싱턴 주에 남북으로 뻗어 있는 캐스케이드 산맥의 노스 캐스케이즈(North Cascades)에 있는 봉우리들 중의 하나다. 이 일대의 가장 큰 호수 중의 하나인 콜척 호수에서 수직으로 3242피트 솟아 있다. 상록수림과 호수, 화강암 준봉들로 워싱턴 주의 자연을 대표하는 경치 중의 하나로 꼽힌다. 왼쪽으로 콜척 빙하를 사이에 두고 콜척 피크(8705ft)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난 겨울 포틀랜드의 한 산악인이 이곳에서 등반 중 실종되기도 하는 등 전문산악인들 사이에서도 난이도를 중상급으로 친다.


글·사진 =백종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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