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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말, 뇌 망가뜨려 '생각의 감옥'에 가둔다

'보이지 않는 칼' 언어폭력

"넌 제대로 하는 게 뭐야." "시키는 거나 제대로 해야지." "넌 늘 그게 문제야."

일상에서 무심코 말하거나 듣는 말이다. 별문제 없어 보이지만 모두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언어폭력'이라고 하면 욕설이나 폭언·고함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언어폭력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폭넓다. 사소하고 단순할 때가 많다. 듣는 사람에게 모욕감이나 분노·불안감·모멸감을 일으켜 우울증, 불안장애, 인격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초래한다. 급기야 자살로 내모는 사례마저 있다. 전문가들이 언어폭력을 두고 '보이지 않는 칼'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어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 30대 초반의 정모씨가 찾아왔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그는 상담 의사에게 다짜고짜 "죽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꿈에 그리던 회사에 다니게 됐다는 기쁨에 2년 전 입사 이후 열정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3년 선배인 이모씨 때문이었다. 이씨는 사사건건 정씨에게 트집을 잡았다. 회의 시간엔 면박을 주고 "머리 모양이 왜 그러냐" "목소리가 너무 여자 같다" "왜 사무실에서 슬리퍼를 신느냐"며 사소한 것까지 지적했다. 이씨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정씨를 나무랐고, 그때마다 정씨는 수치심을 느꼈다. 불쾌했지만 속으로 삭였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정씨의 업무능률은 떨어졌고 2년이 지나선 우울증까지 생겼다. 그는 "선배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괴롭힘을 유서에 쓰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감정 기억, 스트레스로 작용

영국의 철학자 존 오스틴(1911~60년)은 "거친 말은 주먹을 날리는 행위와 같다"고 했다. 언어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언어가 폭력이 되는 과정을 기억의 특성으로 설명한다.

수많은 기억 중에서도 머리에 오래 남는 기억 중 하나가 바로 감정이 동반된 기억이다. 이를 '감정 기억'이라고 한다. 작년 이맘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언젠가 행복했거나 우울했던 때의 기억은 비교적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이유다.안 좋은 기억의 경우 당시 느꼈던 감정으로 인해 체내에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이 뇌에서 기억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비슷한 기억이 지속적으로 덧대지면서 만성 스트레스로 자리 잡는다. 몸에 난 상처는 금방 치유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깊이 자리잡고 오래간다. 언어폭력 피해자는 오랫동안 괴로워하지만 가해자는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다.

잔소리도 반복되면 언어폭력

욕설뿐 아니라 사소한 잔소리도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어느 대학병원 암센터에 암 진단을 받고 입원한 남성 환자가 있었다. 암이 상당히 진행된 후라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다. 그는 입원 도중 갑자기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그가 털어놓은 고민은 정작 암 치료에 관한 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잔소리였다. 그는 "몸에 좋다며 입맛에 맞지도 않는 것을 자꾸 먹으라거나, 운동을 왜 안 하느냐, 햇빛을 쬐어야 병이 낫는다 등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며 "너무 괴로워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뇌의 기능 떨어뜨려

언어폭력이 정작 무서운 이유는 뇌 구조 자체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감정·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을 줄어들게 만드는 것이다. 하버드의대 연구진과 한국가톨릭의대 공동연구팀이 진행한 연구결과는 언어폭력이 정신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언어폭력의 영향 평가를 위해 건강한 성인 1271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 중 특히 부모로부터 언어폭력을 심하게 받으면서 자랐지만 딱히 치료를 받지 못한 16명을 가려낸 뒤 이들의 뇌 영상을 정상인 16명의 것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뇌의 백질 영역에서 두 집단 간에 차이를 보였다. 언어폭력에 노출된 집단의 백질 경로가 정상 집단에 비해 좁아져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백질은 뇌 내부에서 각 영역을 구조적으로 연결하면서 언어 기능과 감정조절 기능을 담당한다. 이 경로가 좁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기능이 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즉, 언어폭력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말을 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우울·불안 위험이 크다는 결과다. 특히 연구진은 언어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가정폭력을 목격하거나 성적 학대에 노출되는 것 못지않게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한다고 밝혔다. 언어폭력의 심각성이 성적·신체적 학대보다 덜하지 않다는 얘기다.

누적된 폭력, 대사질환 유발

언어폭력은 뇌 구조 변화에 그치지 않고 신체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돼서다. 언어폭력으로 인한 불안·우울·분노의 감정상태가 만성화되면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고 이것이 교감신경계를 과도하게 활성화시킨다. 가슴 두근거림, 식은땀, 근육통, 호흡곤란 등 다양한 신체 이상 현상이 생긴다. 또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로 인해 우리 몸이 응급상황으로 착각해 영양분을 혈액으로 끌어당겨 대사증후군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가 지속되면 혈중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수치가 높아진다. 나아가 대사증후군이 잘 생기고 면역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언어폭력은 가족·직장·학교 같은 조직 내부에서 대물림되기 일쑤다. 실제로 언어폭력 때문에 변화된 뇌의 구조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가해자의 뇌 구조와 유사하다. 장기적으로 언어폭력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전염병인 셈이다.


류장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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