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크지만, 한인사회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볼티모어 폭동 그 후 1년]폭동이 남긴 의미와 한인사회가 나가야 할 길은?
한인 업소 집중적 피해 입었지만 한-흑 갈등 아니다
폭동 1주년을 맞아, 한인들이 바라본 볼티모어 폭동의 의미와 당시 대응, 앞으로 한인사회가 나가야 할 과제 등을 폭동 당시 맨 앞에서 활동한 이들을 통해 짚어본다. 좌담회는 1년 전 바로 그날인 27일 오후 3시 메릴랜드 총국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편집자 주>
좌담회 참석자:
백성옥 MD 한인회장
송기봉 MD 식품주류협회 회장
최향남 한인 여성회 회장
찰리 성 변호사
진행 허태준 기자
-꼭 1년 전이다. 지난해 볼티모어 폭동은 한인사회에 많은 문제점과 도전 과제도 던져줬다. 지난 1년간 한인사회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
송기봉(이하 송): “긍정적인 부분은 협회 회원 가입이 조금 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바뀐 것이나 달라진 부분은 없다.”
찰리 성(이하 성): “한인 사회에 큰 변화는 없다. 다만 상처만 계속되고 있다. 비즈니스 환경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피해만 더 커졌다.”
백성옥(이하 백): “모든 일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 같다. 침체 되면 침체했지 좋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한 건 없는 것 같다.”
최향남(이하 최): “한인사회가 당시에도 볼티모어의 문제로 한정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별로 관심도 없었다. 지금도 하나도 안 변했다.”
-폭동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한인사회에서 본 볼티모어 폭동 원인은
성: “단순히 프레디 그레이 사망이 원인이 아니다. 70년대 이후 공장 지대가 떠나면서 일자리가 없어졌다. 아이들은 사실상 고아들이 됐다. 실업률과 범죄, 마약이 혼합된 악순환의 고리에서 그레이가 도화선이 됐다.”
최: “못 배우고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연쇄적인 문제들이 결합해 일어났다.”
백: “볼티모어에서만 30년을 살았다. 흑인들은 피해 의식이 크고, 항상 핑곗거리를 찾는 것 같다. 그레이를 통해 낙담을 폭력으로 분출했다.”
-폭동사태를 처음부터 경험했다. 당시 폭동에 대처하는 한인사회의 모습, 어떠했나.
최: “처음으로 겪는 상황이다 보니 초기에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있었다. 특히 주류사회에 한인들의 현황과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2세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또다시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
백: “한인 부모들은 2세들에 자신의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고생할망정 자식들은 일을 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의 상황을 알게 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자녀들에게 반드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성: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최대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한인 커뮤니티가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러워했다. 다만 초기 일 처리 과정에서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도 한다. 가령 일부 행사의 경우 실질적인 도움이 없었다. 특히 각 기관이 약속한 부분을 확인하고 이행하는지를 따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송: “당시에는 주위에서 무엇을 해준다는데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피해를 당한 한인들의 삶이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세금 보고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준비됐더라면 쉽게 권리를 찾았을 것이다.”
-1주년을 맞아 볼티모어 피해 상인들을 둘러봤다. 많은 이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는 볼티모어 한인 비즈니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백: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의 세금 보고는 예전보다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영세 비즈니스는 운영 방법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은 사실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대책은 없었다. 이번 폭동 사태를 계기로 미래를 내다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폭동 관련 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성: “처음 소송에 참여한 65개 업소 중 15개 업소가 빠졌다. 지금은 50개 업소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올 초 시 정부에서 소송 참여 업소들의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요구했다. 3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최근 시 정부에 전달했다.”
-이번 폭동에서 한인들의 피해가 컸다. 한인 업소들이 타깃이 된 것인가.
송: “한인 업소들이 타깃은 아니다. 폭동이 발생하고 이동하는 선상에 한인 업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흑인들이 필요로 하는 주류나 뷰티 서플라이 업소들이 많이 당했다. 대부분 한인이 운영한다. 한인들 피해는 절대로 한-흑 갈등이 아니다. 폭동 이후 일부 단체들이 한-흑 갈등 문제를 얘기하는데 절대로 아니다.”
-메릴랜드 한인사회에서 볼티모어가 갖는 의미는 크다. 하지만 여러 환경이 한인커뮤니티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한인사회가 헤쳐나갈 방안은.
송: “단합해야 한다. 단체들이 한인회를 중심으로 모이고,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 이에 대해 좀더 깊게 논의를 해야 한다.”
최: “한인 커뮤니티는 이제 우리끼리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다른 커뮤니티와 어울려야 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야 답을 찾을 수 있다.”
성: “투표를 통해 우리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도 중요하고, 한인들 스스로 정치인을 길러야 한다. 폭동 당시 볼티모어에 2~3명의 한인 정치인이 있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백: “볼티모어 시장 예비선거에서 이긴 캐서린 퓨 후보의 승리 파티장에 갔다. 뜻밖에 목사들이 많았다. 한인 사회도 교회들이 참여해야 한다.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도록 목사들이 나서야 한다. 이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다.”
-볼티모어 폭동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백: “1979년 눈폭풍이 있었다. 당시도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가게는 다 털렸다. 이후 눈만 오면 가게에서 잤다. 이번 폭동은 나에게 두 번째 폭동이다. 한인들을 대변할 단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한인회가 우리들의 보험이다. 평소에는 있으나 마나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목소리의 창구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 “폭동의 여파가 한인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면 좋겠다. 한인 커뮤니티가 더 가까워지고, 비즈니스인들이 한 단계 발전하는 등의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송: “당시 한인회와 교계가 한 덩어리 됐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 하지만 아직도 따로 논다. 개인적인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한 덩어리가 됐으면 좋겠다.”
최: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원봉사한다는 정신, 젊은이들과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다만 아쉬운 것은 긴급 상황에는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정리=허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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