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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상의 보석이야기]남자가 가지면 저주를 받는다는 다이아몬드

나는 외아들로 태어나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할아버지부터 이모, 고모, 심지어 내 아랫것들, 누나들까지 내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벌벌 떨었다. 과자를 사면 반은 내 것이고, 반은 나 때문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나머지 4명의 무수리들 것이었다. 식탁에 생선이 오르면 몸통은 내 것이요 머리와 꼬리만 그녀들의 것이었다. 갓 만들어 낸 따듯한 밥은 언제나 내 몫이어서, 나는 어렸을 때 찬밥이 무슨 뜻인 줄 몰랐다. 나의 이런 유년기 환경은 세상은 살 만한 곳이란 걸 일찍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내가 알고 있던 사랑은 집착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내가 알고 있던 관심은 간섭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불우한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친구들과 뭐라도 하려 하면 누나들은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나쁜 길로 빠진다고 못하게 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엄마에게 빠짐없이 고자질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과 여동생이 나를 버리고 이란으로 떠나 버린 일 년 동안 나는 서커스단의 동물처럼 누나들에게 철저히 사육되고 조련되었다.

전에 나는 누나들도 이름이 있는지 몰랐다. 자기네끼리는 뭐라 부르는데 나는 그들을 그냥 ‘야’라고 불렀다. 내가 누나들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골방에 끌려가서 개 패듯이 뒈지게 얻어맞은 후였다. 그때야 누나들도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름 뒤에는 누나 자를 꼭 붙여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중학생이면 밥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누나들의 격려에 밥하는 법도 배웠고 누나들이 늦은 밤 시장기를 느낄 때면 라면이나 떡볶이도 만들 줄 아는 센스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쫄따구는 지구를 생각해 밥풀 하나 남김없이 깨끗이 핥아 먹어야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당시 대학생이던 큰누나는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는데, 캠퍼스 커플로 만난 지금의 큰 매형에게 푹 빠져 내 용돈 주는 것도 잊어버리고, 주는 액수도 점점 줄어갔다. 나는 모자라는 용돈을 보충하기 위해 내가 아직도 우리 집에서 왕인 줄 알고 있는 다른 친척 집을 전전하며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라는 맹인 가수 조용복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일 년의 시간이 지나고 엄마가 이란에서 돌아오시는 날 나는 그동안의 설움을 날려 보내고 너희 셋 무수리들을 가만두지 않겠노라 복수를 다짐하면서 김포공항으로 나의 구세주를 마중 나갔다.

환영장의 자동문이 열리고 나의 구세주는 머리에 후광을 발하며 나타났고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엄마의 품에 안겼다. 엄마는 나를 보시더니 “우리 아들 엄마 없는 일 년 동안 어른이 다 되었구나.” 하시며 흐뭇해하셨다. 그리고 나는 지난 일 년의 노예생활에서 겪은 모진 고초를 엄마에게 고발하려는 순간 나는 세 무수리 아니 세 누나들의 눈빛을 보게 되었고 그 순간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골방의 추억을 떠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 공부보다 더 열심히 외우고 또 외웠던 지난 일 년간의 만행들을 홀딱 까먹게 되었다. 무수리들을 징벌하려는 의지는 어느새 누나들과 더불어 “차카게 살자.”로 바뀌었고 내 두 손은 누나들의 손에 잡혀 차에 올랐다.

보석상식 46: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이아몬드 코이누르(KOH I NOOR)



5000년 전의 기록에서부터 나오는 이 다이아몬드는 서기 1304년부터 역사서에 코이누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코-이-누르는 페르시아어로 ‘빛의 산’이라 뜻으로 이것을 가지면 “ 원하는 것을 모두 얻게 된다”는 전설과 함께 “남자가 가지면 저주를 받는다” 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무려 105캐럿에 달하고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코이누르는 본래 인도의 카카티야 왕조의 것이었지만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마지막엔 인도를 침략해 식민지로 만든 영국의 손에 떨어지게 됩니다. 당시 인도를 지배한 시크 왕조의 마지막 왕인 둘레프 싱은 영국을 따르겠다는 충성의 뜻으로 빅토리아 여왕에게 코이누르를 바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인도의 왕 둘레프 싱의 나이는 13세에 불과해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인도 정부는 왕의 의지대로 영국에 바친 것이 아니라 영국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것이라 주장하게 되고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반환을 요구합니다.

남자가 가지면 저주를 받는다는 속설 때문에 영국 왕실은 빅토리아 여왕에서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인 퀸 마더(QUEEN MOTHER)로 이어져 내려오다 2002년 퀸 마더의 사후 지금은 타워 오브 런던에 보관 전시됩니다.

영국은 약탈한 문화재는 돌려줘야 한다는 법이 있지만 2010년 캐머런 총리는 있을 수 없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코이누르를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런 속사정에는 코이누르를 돌려주게 되면 영국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온 수많은 문화재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하는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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