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상의 보석이야기]기생에게 신라금관을 씌우고 술판을 벌이다
옛말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오십 중반이 되어보니 그 말이 절절히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하는 말을 내 귀로 듣고 있노라면 내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아내는 내 걷는 모습이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 아이들은 내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로 착각한 적도 있다.
나는 어릴 적 주말이면 아버지를 따라 시내도 나가고, 산으로 등산을 가곤 했다. 나는 아버지 옆에 없어서는 안 될 자석 같은 존재였다. 어렵게 얻은 귀한 아들이라 아버지는 유난히도 나를 이뻐하셨고 그래서 늘 나를 옆에 끼고 다니셨다.
어느 날인가 나는 아버지와 놀이동산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어려서 이유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아버지와 택시기사 사이 실랑이가 벌어졌고 마침내 기사의 입에서 담기 힘든 쌍욕이 터져 나왔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 상황이 당황스럽고 몹시 화도 났지만 아버지는 화를 꾹 참으시며 별다른 대꾸 없이 차에서 내리셨다.
그 광경을 지켜본 나는 아버지가 슈퍼맨처럼 택시기사를 혼내 줄 거라 기대했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나의 상상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도 창피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세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버지의 행동은 백번 옳았다. 자식 앞에서 기사와 똑같이 쌍욕으로 맞대응했다면 비록 아버지가 슈퍼맨처럼 기사를 물리쳤더라도 나에겐 더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장독대에 올라 칼싸움 놀이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나는 뒤로 물러서다 방범용 쇠창살에 옆구리를 찔렸다. 옆구리에 뚫린 구슬 크기의 구멍을 확인하고 나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나는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후 집 안방에 누워 있었다. 정신이 들면서 서서히 공포가 밀려왔다. 낮에 얻은 상처의 고통이 아니라 퇴근해서 오실 아버지께 혼날 걸 생각하니 막연히 무서웠던 것이다.
아버지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나는 죽은 듯 자는 연기를 시작했다. 아버지 앞에서 눈을 말똥 말똥 뜨고 있으면 한대 얻어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오셔 내 상처를 살피시더니 말없이 닭똥 같은 눈물은 흘리시며 나를 한없이 어루만졌다. 나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 때 영화를 보여 주겠다는 아버지의 꾀임에 빠져 단성사 근처의 비뇨기과에서 남자로 거듭나기 위한 성형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완강히 거부하는 나를 십분이면 끝나니 수술받고 영화 보러 가자는 아버지의 달콤한 속삭임에 또 한번 속아 강제로 수술대에 올랐다.
할리우드 영화 ‘7인의 신부’를 볼 생각에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수술을 받고 있는데 옆에서 수술을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의사는 나를 수술하다 말고 젊은 간호원과 나, 둘만을 남긴 채 아버지의 응급처치를 위해 옆방으로 이동했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의사는 성형부위를 꿰매다 말고 나가버렸고 나는 그녀와 어정쩡하게 둘이 남았다.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의 몸에 그것도 중요한 그곳에 칼을 들이대자 옆에서 지켜보다 기절해 버리신 거다. 나는 그날 영화를 못 봤다.
아버지는 늘 내 상상과는 다른 리액션을 보여 주셨다. 그것이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걸 나는 내 자식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팔십 중반이 되신 나의 아버지, 어릴 때 막연히 무섭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와 지금은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화하며 농담도 주고받는다. “니가 아직 철이 안 들어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에게 나는 아버지 오래 사시라고 철들고 싶어도 못 든다고 맞받아친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자란 내 딸들도 아빠인 나를 친구처럼 대한다. 하지만 가끔은 딸들의 구박이 지나쳐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다. 스물네 살에 미국에 와 올해 만 삼십 년이 된다. 아무리 고치려 해도 구제불능인 내 영어 발음은 항상 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지만 나는 그래도 항상 웃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말한다. “까불지마! 요놈들아, 그래도 이 안되는 영어로 미국에서 너희들 이만큼 키워 났거든!”
오늘따라 아버지가 유난히 생각난다.
보석상식 45: 기생에게 신라금관을 씌어 놓고 술판을 벌인 고이즈미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금관 국가입니다. 세계에 현존하는 고대 금관은 총 10점인데 그중에서 신라금관 6점과 가야 금관 1점이 우리나라 것입니다. 보존상태도 우리의 것이 가장 완벽하다고 합니다.
신라금관이 발견된 곳은 1921년 경주의 대릉원 바로 옆인데 주민이 집터를 파다가 금관을 비롯해 수많은 유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일제 당국은 제대로 된 기록도 없이 고고학 발굴사에 천추의 한을 남기며 단 4일이라는 짦은 시간에 발굴을 마칩니다. 이곳은 금관이 발견된 곳이라 하여 금관총이라 이름 짓습니다.
1500년 전 선조의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신라금관은 이렇게 아픈 역사 속에 발견되면서 또 한번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1935년 평양 박물관은 경성 박물관으로부터 서봉총 금관을 대여받아 특별전을 열었는데 전시회를 마친 뒤풀이 술자리에서 일본인 관장 고이즈미란 자는 한 기생의 머리에 금관을 씌워놓고 흥청망청 술판을 벌이는 망동을 벌인 것입니다. 이것은 문화재에 대한 지워버릴 수 없는 망국의 수모인 것입니다. 나라를 잃으면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도 홀대받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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