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배 판사 '리앙 판결'<실수로 발포해 흑인 사살한 전직 중국계 경관> 후폭풍
데일리뉴스 "인종에 의해 정의 왜곡" 비판
아시안 커뮤니티 "터무니없는 주장" 반박
당시 정황 고려하면 사실 근거한 소신 판결
뉴욕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데일리뉴스는 20일자 사설에서 이번 사건의 재판을 맡은 뉴욕주 지방법원 전경배(사진) 판사가 내린 판결은 "치명적 오류"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사설 말미에는 "판사와 피의자가 공교롭게도 같은 아시안이다. 인종에 의해 정의가 왜곡됐다"며 노골적으로 아시안 판사가 같은 아시안 피의자 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배심원단과 검찰이 적용한 피의자 피터 리앙(28)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를 전 판사가 처벌 수위가 낮은 '부주의에 의한 살인'으로 낮춘 행동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배심원단이 심사숙고 끝에 유죄 평결을 내린 혐의를 임의대로 낮추는 것은 판사의 몫이 아니라는 얘기다.
사설은 "12명의 배심원단은 유죄 평결 전에 부주의에 의한 살인 혐의도 고려했었다"면서 "하지만 그러한 결정에 따르게 될 책임의 무게를 감안해 보다 엄격한 혐의를 결정했다. 또 순찰 중 경찰관의 손가락은 방아쇠에 올려 놓아선 안 된다는 경찰 규정과 방아쇠를 당기려면 충분한 힘이 실려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 뒤 리앙 전 경관의 잘못을 인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배심원단의 결정이 합당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일간지 뉴스데이도 사설을 통해 "이번 사건은 누구를 위한 정의도 아니다"고 밝혔다. 뉴스데이는 직접적으로 전 판사의 결정이 잘못됐다고는 하지 않았으나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 만족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포스트는 사설 대신 재판 결과에 대한 찬.반 의견을 갖고 있는 인사들을 인터뷰해 엇갈리는 커뮤니티 반응을 조명했다.
그러나 사건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 판사의 판결이 팩트에 근거한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건은 2014년 11월 20일 브루클린에 있는 시영아파트 '루이스 H 핑크 하우스'의 계단에서 일어났다. 리앙 경관은 당시 파트너와 함께 시영아파트 계단을 맨 위층부터 아래층까지 내려오면서 순찰하는 '세로 순찰(Vertical Patrolling)'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8층 계단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과실치사'서 '부주의에 의한 살인'으로 혐의 낮춰
검찰 조사 결과 왼손잡이였던 리앙은 오른손으로 플래시를 들고 왼손에 권총을 쥔 채로 오른쪽 어깨로 8층 계단 문을 밀면서 열었다. 그때 이 아파트에 살던 여자친구를 방문했던 피해자 아카이 걸리가 7층 계단 문을 열었다. 리앙의 권총에서 총탄이 발포된 건 이 순간이다. 즉 리앙은 8층 계단에 걸리는 한 층 밑인 7층 계단에 있었는데 아래층에서 걸리가 문을 여는 소리에 놀라 그만 리앙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그렇게 좁은 계단에서 발포된 총탄은 벽을 맞고 튕겨져 나가면서 아래층에 있던 걸리의 가슴에 박혔다. 걸리는 당시 총에 맞은 것도 모르고 총소리에 놀라 피하다가 5층에서 쓰러졌고 곧 숨졌다.
여기까지가 당시의 상황이다. 리앙이 걸리를 향해 총을 의도적으로 쏜 것이 아니라 컴컴한 계단에서 실수로 발포된 총탄이 벽을 맞고 튕기면서 걸리를 맞춘 것이다. 걸리에게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지만 당시 경찰관이 그를 사살하기 위해 발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정황이다.
전 판사는 이러한 사건 정황, 실제로 일어난 팩트를 눈여겨본 것이다. 전 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살해할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또 의도를 입증할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전 판사는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리앙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건 부적절한다고 판단했고 여론의 비난을 예상하면서도 소신대로 혐의를 낮춰 보호관찰 5년과 사회봉사 800시간형을 선고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지난 2004년 1월에도 발생했었다. 브루클린의 한 시영아파트 옥상을 순찰 중이던 경찰관이 실수로 발포해 19세 청년이 사망한 사건이다. 해당 경찰관은 당시 '부주의에 의한 살인' 혐의가 적용됐으나 대배심은 사건 자체를 '사고'로 규정하고 아예 불기소 결정했다.
이번 데일리뉴스의 사설이 보도되자 아시안 커뮤니티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리앙이 유죄 평결을 받았을 당시 "그는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던 존 리우 전 뉴욕시 감사원장은 본지에 보내 온 메시지를 통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전경배 판사는 법조계에서 오랫동안 존경받고 우수한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신동찬 기자 shin.dongch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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