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4·19혁명, 교회 민주화, 그리고 통일
이정근 / 성결교회 목사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이다.' 4·19세대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표어였다. 자유민주주의 발전사가 이를 증명한다. 근대 민주주의를 촉발시킨 영국 청교도혁명,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전쟁이 그랬다. 그런데 속내를 짚어보면 민주주의는 교회에서 시작됐고 교회들의 강력한 저항운동에서 큰 열매를 맺었다. 500주년을 앞둔 종교개혁운동의 핵심 '만인제사장론'이 그것을 웅변한다. 현대말로 만인목사론, 만인장로론, 만인선교사론이다. 게다가 통치자들은 국민의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직분이라 것, 한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중하게 여기는 인권, 원수까지 사랑하는 박애정신이 자유민주주의의 모태였다. 이것은 더 근원을 따지면 삼위일체 신론에서 시작된다. 링컨 대통령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라는 인류역사 최고명언도 어떤 목사의 설교를 인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도 한국교회와 미주한인교회들이 자유민주주의 확산에 무관심하거나 역행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4·19 때에도 젊은 크리스천들은 적극 참여했지만 교회는 별로 한 일이 없었다. 아니, 교회 자체가 목사 독재체제, 당회·노회 집단독재체제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형상이기에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체제여야 한다. 법치, 자유, 평등, 인권, 박애, 정의 같은 민주적 신앙가치가 속히 교회에서부터 회복돼야 한다.
4·19혁명으로 사회가 극도의 무질서와 혼란을 겪으면서 5·16군사혁명이 일어났다. '앙시앙 레짐' 곧 구정권의 반격이었다. 4·19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들이 군사정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혹은 그 하수인들로 변절된 것은 또 하나의 오점이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산업화에 매진한 것이나 자가반란으로 몰락한 것, 그래서 결국 대한민국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4·19학생혁명의 효과였다.
그런 눈으로 남북통일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조선 3대 김씨 통치자들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미군주둔, 경제발전, 자유민주주의? 그것들보다도 더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바로 4·19혁명과 통치자 암살사건이다. 북조선은 이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할 토양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그간 폐기처분되었던 '공산주의'라는 말을 다시 사용한다는 것, 그래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기치를 높이 들었다는 것도 남쪽의 자유민주화와 산업화를 두려워하는 모양새다.
북한인민 전체가 한 사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맞는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인민 전체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허위이다. 그래서 북한정권과 인민들에게 권고한다. 어서 속히 4·19혁명을 자진수입하기 바란다. 거세게 불어가는 자유민주주의 문명질서에 스스로를 편입시켜야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혹시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와 칠골례배당에서 그 운동이 시작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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