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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도 누군가를 질투하면서 흔들렸을 테다"

영화 '동주' 주인공 배우 강하늘

오늘부터 북미 주요 도시 개봉
'하늘과 바람과…' 몇 번이고 읽어
"좋은 배우보다 좋은 사람 되고파"


강하늘(26)은 '동주' 촬영을 앞두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윤동주 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흥분과 기대가 솟구쳤는데,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불안과 고민으로 바뀌었다. "시인 윤동주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그려줘야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 걸까 점점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게 이렇게 부담스러운 거구나 싶었죠."

70년 전 세상을 떠난 역사 속의 인물, 아름다운 시를 남긴 천재 시인…. 윤동주를 설명하는 교과서의 거창한 말 대신, 강하늘은 그를 이 영화에서 '한 사람'으로 숨 쉬게 하고 싶었다. "윤동주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면서 순간순간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시나리오가 윤동주의 그런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어 좋았어요." 그건 '동주'가 그리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만 봐도 알 수 있다. 동갑내기 고종사촌으로 어릴 적부터 친형제처럼 붙어 지낸 두 사람. 강하늘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로 함께해야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는" 반쪽 같은 사이다. "윤동주에게 송몽규는 애증의 존재였어요. 작가가 되고 싶은 건 윤동주였는데, 신춘 문예에 덜컥 당선된 건 송몽규였어요. 그래놓고 송몽규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가 요구하는 혁명가가 되려 했어요. 윤동주에게 생애 첫 열등감과 질투를 불러일으킨 존재가 바로 송몽규인 거예요. 그 미운 정까지 쌓여 서로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진 거고요. 그렇게 윤동주는 평생 송몽규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죠."

서로에게 각별했던 두 인물을 연기한 강하늘과 박정민도 그런 사이가 됐다. "정민 형과는 다른 작품에서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민 형은 내게 송몽규 그 자체예요. 다른 작품에서 다른 역할로 양복 빼입고 만나면 안 될 것 같아요. 형과는 '동주'라는 이 아름다운 영화 한 편만 우리 둘의 트로피로 남겨두고 싶어요. 그만큼 이 영화를, 윤동주와 송몽규라는 역할을 사랑해요." 윤동주가 송몽규에게 그러했듯, 송몽규란 인물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채 연기하는 박정민에게서 그가 자극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연기하는 배우는 처음 봤어요. 그 우직함이 엄청 멋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직진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영화와 송몽규라는 인물을 너무 사랑해서 앞뒤 안 가리고 빠져들더라고요. 얼마나 감정을 실었으면 송몽규가 우는 장면을 찍다 실제로 안압이 올라 눈에 핏줄이 터졌겠어요." 누구 하나 빠짐없이 치열하게 소중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그 각별한 행복 속에서 강하늘은 윤동주라는 큰 이름을 연기한다는 불안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80쪽 남짓한 시나리오가 대체 뭐라고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면 그는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윤동주의 시 세계를 가리켜 '부끄러움의 미학'이라 설명하잖아요. 윤동주를 연기하면서 보니 그 특유의 부끄러움은 자신을 못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충만한 자기애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기 때문에 그에 미치지 못하는 걸 부끄러워한다고 할까. 그만큼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볼 수 있는 건, 자신을 굉장히 사랑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건 강하늘도 마찬가지다. "나를 깎아내려야만 올라갈 힘이 생겨요. 스스로 빈틈을 느껴야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이고 뭔가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열등감과 부담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안으려 한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연기하는 게 재미있어서, 연기 자체를 사랑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나보다 훨씬 뛰어난 배우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열등감,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겠다는 부담이 지금껏 제게 가장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강하늘이 이렇게 말하더니 자신이 아주 재미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듯 허허 웃는다.

'서시(序詩)'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노래했던 시인 윤동주처럼, 강하늘에게 가치 있는 것이란 자신을 몰아쳐서 도달할 수 있는, 극기(克己)의 그 무엇은 아닐까.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한계를 느껴요. 연기가 참 어려운 게, 감정에는 정답이란 게 없잖아요. 그런데 관객이 보기에 내 연기가 그 인물의 정답처럼 느껴지게 뭔가를 해내야 한단 말이에요. 그게…참(웃음)."

돌이켜보면 강하늘은 순수함으로 똘똘 뭉친 인물을 연기했을 때 가장 빛났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여린 소년 에른스트, 영화 '스물'(2015, 이병헌 감독)의 숙맥 모범생 경재 그리고 '동주'의 동주까지. 특히 '동주'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번번이 소리쳐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표정과 눈빛에서, 시를 너무 사랑해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젊은 청년의 온갖 감정이 형형하게 읽힌다. "제가 생각하는 순수함이란 자기 안에 어떤 기준이 튼튼히 서 있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기준을 바꿀 수 없는 올곧음 같은 거예요. 반대로 요령을 부리거나 머리 굴리는 역을 맡으면 연기가 잘 안 되고 고민이 많아져요. 제가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 사실 전 그렇게 다양한 면면을 지닌 사람이 아니예요(웃음)."

강하늘에게 좀 더 다양한 역할을 잘 소화하기 위해서는 평소 다양한 감정이나 생각을 직접 품어 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가 훨씬 큰 대답을 돌려받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좋은 사람이란 그저 착해 빠지기만 해서는 안 되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치사하고 속 좁은 감정까지 다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게 목표예요. 삶 전체를 봤을 때 그게 좋은 배우가 되는 것보다 더 값진 것 같아요(웃음)."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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