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반갑다 '동주'
이성호/미주민족시인문학선양회회장·시인
사실 '동주' 같은 시인이 있었기에 내가 시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시를 쓰면서 늘 윤동주를 좌표 삼으려 애를 썼다. 첫 시집 서문에도 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를 얘기했었다.
윤동주 기념사업을 하면서 한때는 동주의 기일인 매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옛 옥사 현지에서 열리는 진혼제나 그의 모교 동지사대학과 릿교대학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도 참석했었다. 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인들과 교류도 했다. 그의 죽음이 너무 분하고 애석해서 힘겨웠지만 연중 하루 만이라도 그와 그 작품을 기리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닌가 해서, 10년 넘게 지금까지 문학 동지들과 열심히 우리 산장에서 문학행사를 하고 있다. 평상시에도 동주를 기억하게 하고 알리기 위해 나는 젊은이들이나 학생들에게 '윤동주를 아느냐'고 불쑥 불쑥 물어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와 민족이 동주를 잊고 지낼 때, 일본 학자들은 사죄하는 마음으로 폐허가 된 동주의 무덤을 발굴하고 그의 억울한 죽음(생체 실험)을 밝히기 위해 온갖 자료들을 찾아내고 있을 때, 본국 문인단체들은 그룹관광으로 온 세계를 다니며 유명작가들의 생가를 방문했다.
우리 역사 교과서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얘기에는 인색하고 부정적 일들을 부풀려 우리 후손에게 분노의 씨앗을 뿌려주고 애국심을 결핍하게 했고 민족 자존심도 심어주지 않았다. 집단 이기주의, 일본과의 운동경기는 이겨야 한다는 막연한 감정뿐, 민족 정체성도 상실하고 윤동주, 송몽규 같은 이름조차 모르고 점점 정서적 교양마저 고갈되고 있으니 인간의 희로애락 그 본질마저 파괴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초창기에는 이곳 일부 문인들조차도 해마다 열리는 민족시인 행사를 외면해 외로울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동주 문학의 밤에 참석하는 모든 분을 동지라고 한다. 그런 가운데도 연인원 2000여 명이 동주의 문학행사에 다녀갔으니 가히 동주는 우리 모두의 애인이다.
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어울리는 산장이라며 50마일, 100마일씩 달려와 '별 헤이는 밤'을 낭송하며 학창시절로 잠시 돌아가 보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영화 '동주'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선진 한국이라면서 온갖 폭력영화를 다 만들면서도 이제서야 '동주' 영화를 만들다니.
늦었지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작금에 온 가족과 이 신선하고 자랑스런 영화 '동주'를 감상하며 특히 우리의 자녀에게 동주를 소개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질 나쁜 역을 맡은 사람들이 동주의 '서시' 중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대사를 비웃듯이 할 때면 정말 분노가 치밀 때가 있다.
부디, 지금 본국 정치인이나 종교인 그리고 모든 국민이 영화 '동주'를 보고 '서시'를 암송하며 생활에 좌표를 삼았으면 한다.
"반갑다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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