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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윤동주 시에 비친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영화 '동주' 이준익 감독 인터뷰

내달 1일 북미 주요 도시 개봉
시대 정신 그리며 큰 감동 전해
"강하늘 모든 게 윤동주와 흡사"


'사도'(2015)에서 사도(유아인)와 영조(송강호), 부자 관계에 집중해 파국의 드라마를 그려냈던 이준익(57) 감독. 그가 또 다시 두 인물의 관계를 치밀하게 파고든, 비극의 서사 '동주(영어제목 Dongju:The Portrait of A Poet)'를 내놓았다. 윤동주와 송몽규, 서로에게 거울 같은 존재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뜨거웠던 미완(未完)의 청춘에 시대의 아픔을 녹여냈다. 지금껏 한 번도 영화화되지 않았던 윤동주의 삶을 흑백 화면에 담아낸 과정은 분명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이준익 감독에게 도전의 이유를 물었다. '동주'는 내달 1일부터 북미 주요도시에서 상영된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이 영화에 유독 애착을 보였다고 들었다.

"저예산 흑백으로 찍었다. 그간 찍어 왔던 상업영화와는 전혀 다른 시도다. 각별할 수 밖에 없지."

-형식적인 차별화를 시도한 이유는 뭔가.

"2011년 일본 교토국제사극영화제에 참가한 김에 도시샤 대학의 윤동주 기념비를 찾았다. 그 기념비가 남의 땅에 서 있는 뜻에 대해 영화로 풀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교복을 입은 윤동주의 흑백 사진을 보며, 나의 중고생 시절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다들 윤동주 시(詩)에 비친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모두가 사랑하는 윤동주를 상업적 강박과 부담 속에서 소환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비(非)상업적인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시나리오를 제작자인 신연식 감독이 썼다.

"윤동주 영화를 저예산으로 찍고 싶은데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하더라. 그에게 윤동주와 송몽규, 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꽃다운 나이에 청춘을 유린당한 그들이 남긴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물론 '일본 군국주의여, 통렬히 반성하라'는 의미도 있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비중이 비슷하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 송몽규 없이 윤동주만으론 영화를 만들 수 없다.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70년간 그를 다룬 영화가 나오지 않은 거다. 송몽규가 동물적인 행동주의자라면, 윤동주는 강인한 식물 같은 관념주의자다. '참회록' 같은 시도 쓸 줄 아는, 결단력 있는 상남자이기도 하다."

-'사도'에 이어, 또 다시 두 인물의 관계를 파고 들었다.

"어떤 사람의 진실은 동시대를 같이 살아왔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송몽규의 일련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윤동주의 심경이 '자화상'이란 시에 녹아 있다. 송몽규가 교토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클라이맥스신에 그 시를 넣은 건, 일심이체 같은 둘의 관계에 대한 영화적 해석이다. 송몽규가 없었으면 윤동주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윤동주는 알아도, 송몽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윤동주는 과정은 대단하진 않지만, 결과가 아름다워 누구나 기억한다. 하지만 송몽규는 과정은 아름답지만, 결과가 없어서 아무도 기억 못한다. 실패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과정을 소홀이 여기는 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나 또한 송몽규를 잘 몰랐다. 그게 부끄러워 이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를 통해 송몽규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었다."

-부끄러움이야말로 윤동주 시의 미학이 아닌가.

"자신을 찾아온 윤동주에게 정지용 시인은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지'라고 한다. 윤동주 시엔 부끄러움의 미학이 담겨 있다. 시대적 배경과 내면의 갈등,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자조적 한탄이 '참회록' '서시' '쉽게 씌어진 시'에 점철돼 있다. 정약용은 '시대를 아파하지 않는 건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윤동주는 그 말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시를 썼다. 그의 시는 몸으로 쓴 것이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다."

-강하늘과 박정민을 캐스팅한 이유는.

"강하늘은 내가 연출한 영화 '평양성'(2011)으로 데뷔한 배우여서 잘 안다. 외모와 목소리, 내면이 내가 생각한 윤동주와 흡사했다. 박정민 또한 송몽규와 많이 닮았다. 그리고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박정민이 행동주의자의 면모를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영화적 허구는 어떤 게 있나.

"동주를 설레게 하는 여대생 이여진(신윤주), 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 여인 쿠미(최희서)는 허구의 인물이다. 후쿠오카 감옥에서 일본 고등 형사(김인우)가 윤동주와 송몽규를 심문해 내란 음모죄로 엮으려는 것도 허구다. 그들은 이미 심문을 거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됐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적 재구성을 통해 본질을 더욱 명료하게 전달하려 했다."

-가장 좋아하는 윤동주의 시를 꼽는다면.

"시에 서열을 매기는 건 불손한 태도다. 그럼에도 하나를 꼽는다면, '아우의 인상화'다. '사람이 되지'라니, 얼마나 멋진 시인가. 요즘처럼 짐승같은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에선 더욱 의미가 크다. 영화에 그 시와 관련한 장면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신이다."

-고등 형사의 심문을 받던 윤동주와 송몽규가 피 토하듯 울분을 터뜨리는 신을 찍을 때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다.

"내가 펑펑 우는 게 메이킹 필름에도 담겼다. 형사가 사인하라고 들이미는 조서 앞에서 둘은 슬픔이 아닌,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피눈물 나는 자기 고백의 대사를 토해낸다. 강하늘, 박정민의 혼신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두 인물의 영혼이 보이는 듯했다."

-윤동주·송몽규의 비극적인 삶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요즘 청춘이 아무리 아프다 한들, 윤동주와 송몽규만 했겠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순간에도 끝까지 자신에게 솔직하려고 노력하며 죽어갔던 둘의 삶을 온 몸으로 맞이하면, 지금 나의 아픔과 고통은 이겨낼 수 있다는 위안을 받지 않을까. 사도세자의 비극도, 윤동주의 비극도 모두 아름답게 승화시켜야 한다.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중장년도 이 영화를 통해 자기 안 어딘가에 남아 있거나 숨어있는 청춘을 끄집어냈으면 좋겠다."

-윤동주가 만약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

"안 그래도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됐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잃어버린 자신의 아름다운 청춘에 대해 학생들에게 얘기해주고, 더 아름다운 시를 쓰려고 고민하는 윤동주 선생님, 얼마나 멋있나."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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