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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상의 보석이야기]마리 앙투와네트를 죽음으로 이끈 다이아몬드

어느 날 나는 서랍을 정리하면서 예전에 사용했던 여권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잦은 해외 출장으로 나는 10년에 한 번만 갱신하면 되는 여권을 두 번씩 받은 적도 있다. 그것도 일반여권의 두 배 분량이 되는 익스텐션 여권으로. 나의 지난 23년간의 여행 기록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생각하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과거의 기억들로 설렘과 함께 흥분되었다.

한 장 한 장 빚 바랜 여권을 넘길 때마다 입국심사 때 받았던 무수한 스탬프들이 페이지에 빼곡히 차 있었다. 스탬프에 찍혀 있는 나라, 입국 날짜를 보면서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니 즐거웠던 일들도 많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탬프는 내가 콜롬비아에 입국할 때 받은 것이었다. 그 수를 세보니 얼추 130번이 넘었다.

지난 시절 콜롬비아를 내 집 드나들 듯이 다녀왔지만 일 말고 다른 무엇을 했나 생각해 보니 일 아닌 다른 것을 해 본 것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주말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그것도 어쩌다 보고타에서 두 시간 떨어진 저지대를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콜롬비아 제2, 제3의 도시인 깔리, 메데진도 가 본 적이 없고 카리뷰의 역사 도시며 유명한 휴양지인 카르타헤나나 산 안드레스도 한번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심지어 콜롬비아를 방문하면 꼭 가 봐야 하는 대통령궁, 금 박물관,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화가 보테로의 뮤지엄이 내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지척에 있건만 나는 작년에 그곳을 처음 가 보았다. 무엇이 내 삶을 이렇게 여유 없이 각박하게 만들었을까?



콜롬비아에서의 생활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에메랄드를 취급하다 보니 항상 안전과 보안에 신경 써야 했고, 가끔씩 주말마다 도둑이 사무실 벽을 뚫고 금고를 털어 갔다는 뉴스를 접하다 보니 주말에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때 불안한 마음에 주말이면 구입한 에메랄드를 아무도 몰래 사무실 금고에서 꺼내 내가 머물던 아파트로 가져와 내 베게 밑에 숨겨두고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에메랄드를 정식 통관하는데도 불구하고 잦은 콜롬비아 출입은 미국 세관으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들의 괴롭힘은 한때 내가 이 비즈니스를 계속해야 하나 마냐를 고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급기야 나는 변호사를 고용해 정식으로 미 세관에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미 세관의 사과를 받아 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재발 방지 편지를 세관으로부터 받고 일단락되었다. 나중에 내 변호사에게 들은 사실이지만 나를 잘 아는 누군가의 모함으로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한다.

어떤 한국 사람은 보석을 수입한다고 하면 마치 내가 밀수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보석에 대한 관세가 높기 때문에 많은 양의 귀금속이 정식 절차를 통하지 않고 몰래 들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과 달리 보석에 대한 관세의 장벽이 없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 오는 어떤 보석이든 관세가 굉장히 미미하거나 아예 없어 통관 브로커에게 소액의 통관비용을 지불하면 정식으로 수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브로커 비용 몇 백 불을 아끼려고 위험을 감수하는 바보 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식으로 수입해야만 은행을 통해 수입 대금을 콜롬비아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많은 현금을 몸에 지니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남들은 어떡하다 내가 비즈니스를 미국도 한국도 아닌 남미 대륙 콜롬비아에까지 가서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처음에 에메랄드란 보석은 내가 환상을 꿈꾸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물론 그 환상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르시는 분들은 내가 보석을 한다고 하니 어머 어마하게 많은 돈을 번다고 오해한다. 액수도 클뿐 아니라 남는 이익도 많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려면 학교나 학원에 가서 수업료를 내야 하는데 나 또한 보석을 알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보석을 배우기도 전에 냉엄한 인간 사회의 현실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보석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자신할 때 인생의 철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내가 땀 흘린 만큼 버는 것이 진리인 것 같다.

보석상식 42. 프랑스 역사상 희대의 사건이며 프랑스 혁명 발발의 계기가 된 마리 앙투와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의 발단은 프랑스의 왕 루이 15세 때로 거슬러 갑니다. 루이 15세는 그의 애첩 마담 뒤바리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려 600개가 넘는 값비싼 다이아몬드로 목걸이를 주문하게 되는데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으로 목걸이를 팔 수 없게 되자 이 목걸이를 만든 보석상 주인 뵈머는 새 국왕의 아내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목걸이를 사 줄 것을 간청합니다. 하지만 당시 왕실의 재정상태로는 그 목걸이를 살 수 있는 여력이 없었고 그의 제안은 거절됩니다.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 제작된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사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로 인해 프랑스 국민들은 이 목걸이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과 다른 루머가 프랑스를 뒤덮게 되는데 사치스러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국민의 굶주림은 외면하고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면서 국가 재정을 더욱 파탄에 이루게 한다는 루머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 후 혁명정부는 앙투와네트를 심문할 때 목걸이에 대해 물어봤다고 합니다. 사치의 대명사였던 마리 앙투아네트, 목걸이 사건은 그녀와 무관했지만 그녀의 사치로 인해 오해받은 사건으로 그녀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됩니다. 인생무상이지만 인과응보인 것 같습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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