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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한인 이민사 소개


한인 2세, 마르따 림 김

매달 열리는 한인 교양 강좌 프로그램인 UW 북소리 행사에서는 19일 오후 1시 30분 UW Gowen Hall에서 쿠바 특집으로 한인 2세, 마르따 림 김(한국명: 임은희)씨를 초청, 쿠바의 한인 이민사를 소개했다.

임은희 씨는 쿠바의 한인 지도자이며 독립운동가로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훈장, 메달, 표창장을 받은 임천택씨 따님으로 하바나 대학을 졸업, 마탄사스 종합대 교수, 철학부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2000년에는 남편 라울 루이즈씨와 함께 Coreanos en Cuba를 저술했고 번역판, '쿠바의 한국인들'을 출간했다고 소개했다
.
한인 4세 루이즈 이즈끼에르도 김씨에 의해 제작된 쿠바의 한인 이민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인 'Dessarraigo' (뿌리찾기)가 강의 전 상연되었는데 2015년 라틴 아메리카 필름 페스티벌에서 영아티스트 필름 제작자 상을 수상한 20분짜리 작품이다.

임은희씨에 따르면 1033명의 한국인이 농업 이민으로 인천항을 떠나 1905년 4월 15일 1030명이 멕시코 메리나, 유카탄 반도에 도착했다. 부를 이루겠다는 꿈으로 멕시코에 4년 계약으로 도착했지만 4년 후에는 새로운 일자리를 못찾고 거처도 없이 언어, 문화, 전통을 모르는 곳에 남겨지게 됐다.



이로써 아메리카 드림은 악몽으로 변했고 한인들은 멕시코 여러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그 후 1921년, 일본인과 독일인 2명이 멕시코로 찾아와 쿠바를 소개해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쿠바의 사탕수수 밭으로 이주하게 됐다.

약 300명이 1921년 3월 25일 멕시코에서 쿠바에 도착해 사탕수수밭, 설탕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으나 일부 가족들은 낯선 나라에서 일자리, 거처할 곳없이 작은 마을에서 흩어져 살게 됐다.

1950년 '마딴사스'에 도착, 에네껜을 수확, 추수하면서 정착해나가고 일을 잘하는 한국인들은 관리일을 하기 시작했다. '엘볼로'에서는 쿠바에서 최초로 한인회인 대한 국민회를 설립, 한국의 문화, 노래, 음식, 전통 절기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국으로부터 지역적, 문화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고 멕시칸과 결혼하면서 동화되기 시작했으며 경제, 환경적 요건으로 한국적인 것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1940년 노동 국유화로 시민권자에게 일자리 우선권을 주고 1959년 혁명이후 변화로 일자리 평등, 동등화가 추진되었다.

한편, 에네껜 농장이 팔림으로 한국인이 이주하게 되고 연결 고리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가족들도 흩어지게 됨으로써 정체성을 잃기 시작했다. 1959년생 이후는 정체성 개념이 없어졌는데 현재 한인 인구는 약1060명이다.

그러나 1995년, 없어졌던 한인회가 재설립되고 한국인들이 유대 고리를 회복하면서 정체성을 회복하기 시작했으며, 교회시설, 학교를 세우고 선생님을 보내줘서 한국 역사와 말, 글을 가르쳤다. 언어란 문화의 핵심이며 정체성을 만드는 핵심이다. 현 한인회는 그때 한인회의 정신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메세지를 전했다. (임은희(왼쪽5번째)씨가 참가자 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이실비아 기자


이실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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