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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을 키우세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해요"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틴 리

거장 이자크 펄먼이 재능 인정
에이버리 피셔 그랜트상 수상
음악회 큐레이팅에도 관심
리처드 용재 오닐 실내악


5세 때 피아노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고 6세 때 바이올린을 처음 손에 들었던 크리스틴 리(Kristin Leeㆍ29)는 25년을 음악 속에서 살았지만 요즘처럼 자신이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 적이 없다.

특별히 지난해 클래시컬 뮤직계 최고 권위상인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Avery Fisher Career Grant)를 수상하면서 그는 이제 바이올린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2009년 뉴욕 링컨센터의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멤버로 활동하면서 만나 함께 연주회를 갖고 있는 유명 비올리니스 리처드 용재 오닐과의 활동도 그를 성숙한 뮤지션으로 키우는데 한 몫한다.



"어떤 음악가처럼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리처드 용재 오닐을 첫손 꼽을 겁니다. 실내악단 '카메라타 퍼시피카'에서의 활동도 그의 소개로 이뤄졌어요. 그는 선배라기보다 멘토죠. 한국에서 그는 스타잖아요. 그런데도 그는 언제나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예요."

음악인으로서 이외에는 어떤 자리에도 서지 않으려는 그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크리스틴은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친다.

"솔직히 저는 한때 음악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심하게 회의한 적이 있어요."

5년 전, 지구상 이곳저곳에서 자연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났던 때로 그는 회상한다. 세계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많은 나라 국민이 힘들어 하고 있던 때다.

이곳 저곳에서 삶과의 싸움에 지쳐 수많은 사람이 고통 당하고 있는데 바이올린이나 들고 감상에 빠져 있는 자신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하는 심한 부정적 자의식에 빠졌다. 그래서 연주회를 앞두고도 연습을 하기 싫었고 무대에 서는 것조차 버거웠다.

바이올린을 계속 들어야 하는 건가 하는 극단적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릴 무렵 그는 우연히 한 모임에서 조지아 대학의 과학ㆍ수학과 디렉터를 만나게 됐다. 그는 오랫동안 모은 10만달러를 아낌없이 예술재단에 내놓았다고 했다.

"아니 왜요?" 크리스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인간의 삶을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세상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예술에 큰 돈을 쾌척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놀라웠다.

"결국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고 바꾸고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은 예술밖에 없으니까요. 과학이나 수학은 삶을 도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감동시켜 움직이도록 돕는 것은 예술이지요."

예술에 대한 이 과학자의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 그의 머리에 번쩍 섬광이 일었다고 한다. 평생을 예술 속에서 살았으면서도 음악의 귀중함을 깨우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질책이 빛의 칼날이 되어 부정적 마음을 순식간에 도려냈다고 그는 당시를 기억한다.

"연주회 후 사람들이 가끔 무대 뒤로 오셔서 감동적이었다고 감사함을 표하곤 하지요. 심한 병고에 지쳐 있었다는 어떤 분은 제 연주 들으며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눈물 짓기도 했지요. 이 과학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잊고 있었던 이들의 감사해 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이후 크리스틴은 음악인으로서의 자신을 절대 폄하하지 않는다.

연주자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늘 연주 여행을 다녀야 하고 쉼없는 연습 고행, 언제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긴장감에 심신이 피곤한 삶이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이제 음악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뿌듯함으로 어떠한 힘겨움도 이겨낼 수 있다.

한국에서 음악을 시작한 크리스틴이 미국에 온 것은 1995년. 앨라바마 어번대학(Auburn University) 화학ㆍ공학과 교환교수로 오게 된 아빠(서강대 이광순 학장)를 따라서였다. 이곳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던 중 그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교사들 눈에 띄었고 결국 그는 엄마와 함께 미국에 남아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들어갔다.

줄리아드에서 새라 장, 미도리 등을 키워낸 '스타 제조기' 도로시 딜레이 교수의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 1년간은 딜레이 교수가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그냥 학생이었다.

"딜레리 교수는 특별하다 생각되면 일요일 집으로 오라하셨어요. 어느날 제 이름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가 '크리스틴 집으로 와라' 하시는 거예요. 정말 기뻤습니다."

그를 거쳐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먼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그의 밑에서 프로페셔널한 연주 감각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이자크 펄먼은 2000년 줄리아드 프리 칼리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협연한 크리스틴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봤다.

줄리아드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크리스틴은 그동안 많은 선생을 만났지만 자신을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워준 사람을 이자크 펄먼이라고 자신있게 지목한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뉴저지 심포니, 세인트 루이스 심포니 등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오며 국제 음악계에서 '21세기의 떠오르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받고 있는 크리스틴 리.

그는 요즘 또 하나의 커리어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다. 바로 음악 프로그램을 큐레이팅하는 일이다. 쉽게 말하면 음악회에서 프로그램을 정하고 음악인을 선정하는 기획이다.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바이올린과 기타, 민속음악 등을 조화시킨 무대를 꾸며봤는데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일은 창조적이라 재미있어요."

20여년을 미국에서 살았고 그런대로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자신에게서 '마이너리티 여성'이라는 꼬리표 떼기가 쉽지 않다고 느낄 때, 그가 읊조리는 말이 있다.

'파이팅!'(Fighting).

위축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어떤 곳에서든 자신을 숨김없이 떳떳하게 드러내는 것. 그는 매일 이 구호를 외치며 당당한 한인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로 무대에 선다.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요? 제가 무슨…"

겸손하게 미소지으며 그는 정말 "딱 한마디만 하겠다"고 했다.

"실력을 키우세요. 어떤 분야에서든 실력만 있으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해요."

3월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 무대에 서는 '퍼시피카 카메라타' 연주회를 위해 남가주에 머물고 있는 그는 "커뮤니티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 외에는 욕심부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좋은 음악인이 되어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이 야무진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를 커뮤니티가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유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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