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크리스찬 아트이야기] 4. 중세 미술의 전성기: 로마네스크 아트

이정실/미술사학자,워싱턴버지니아대학교수

게르만 추상과 고대 로마의 인간 중심적인 미술의 종합

중세시대를 ‘암흑기’라고도 한다. 이 부정적인 뉘앙스는, 서로마가 멸망한 후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까지의 천년 동안에, 유럽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혼란스럽고 암울한 시기였음을 일컫는 말이다. 또,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큰 진보가 없었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 말은 이탈리안 학자인 페트라르카가 14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서, 고대 로마의 예술을 ‘위대한 빛’으로 보고, 로마시대 이후의 문화적 빈곤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는 이 문화적 침체기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부활시키는 르네상스에 가서야 극복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중세미술의 업적과 가치를 재조명하면서, 미술사학자들은 더 이상 중세를 폄하하지 않았다. 대신에, 초기 기독교 미술, 비잔틴 미술, 로마네스크, 고딕 미술로 나누면서, 각 시대의 예술적 가치를 계속 발굴하여 왔다. 초기 기독교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스페인과 독일, 프랑스, 또 중국에 까지 활발한 포교활동을 통해 전해졌다.

635년에 당나라의 수도 지금의 창안에 선교사 Alopen이 당도해서 당황제 태종의 지지를 받으며 전도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포교활동은 845년 황제 우종의 금지령으로 인해, 2000명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추방되며 막을 내렸다. 그 후 다시 기독교가 중국에 전달되기 까지는 400년이나 걸렸다. 이러한 포교 활동은 심도있는 발굴과 연구를 필요로 하지만, 이미 많이 연구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은 로마네스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로마네스크’는 ‘로마스타일’이라는 뜻으로서, 로마의 건축양식, 즉, 견고한 석조 건물, 둥근 아치, 석조의 반원형태의 돔 등의 화려한 로마 건축에서 파생한 스타일이다. 시기적으로는 1000년경부터 고딕 아트가 등장하는 12세기까지의 기간을 일컫는다. 교회가 세력을 확장하는 기간으로, 기독교가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고, 더불어 수도원이 곳곳에 세워졌다. 큰 규모의 수도원 건축과 성물(relics)들이 교회 안에 안치됨으로 인해, 프랑스 남부, 스페인, 독일 남부, 이태리 등지로의 성지순례의 물결이 크게 일어났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켈트나 게르만 족의 추상적 미술과 고대 로마의 구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미술의 유산들을 종합해서, 매우 독창적이고 대담한 표현을 건축, 조각, 회화에 걸쳐 발전되었다.

대표적인 로마네스크의 건축물은 남프랑스에 위치한 셍 포이 대수도원을 들 수 있다. 이 교회에는 순교자 셍 포이의 성골함이 있는데, 원래는 셍 아그네스라는 성지에 있던 유골을 훔쳐온 것이다. 당시에는 성물을 사거나 훔치는 일이 많았는데, 이로 인한 분쟁도 많았다. 영화 인디아나 죤스에서와 같은 치열한 쟁탈전도 있었는데, 이는, 이 성물들이 실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이것들을 보유함으로 인하여, 순례자들을 끌어들이고, 마을의 관광 수입을 올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셍 포이의 유골을 가져온 자들은, 훔친 것이 아니라 성자가 계시를 내려서 자기들이 옮기게 되었다고 변명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신의 뜻’을 주장하면서 행하는 그릇된 일들은 항상 존재하는 듯하다.

순례 교회가 되면, 교회 동쪽 끝에 위치한 제단을 뺑 둘러서 성소를 마련하고, 순례자들이 그것들을 관람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었다. 외벽에도 작은 예배당들을 두어서, 다른 성물들을 보관하거나 기도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뾰족한 탑과 높은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성가대의 찬양, 기적을 바라는 순례자들로 인하여, 로마네스크 교회 건축은 완벽한 성지가 될 수 있었다. 로마네스크 아트의 가장 중요한 예술품이었던 건축에 비하여, 조각이나 회화는 부수적인 것이었다. 모든 감각과 장르를 어우르는 로마네스크 교회는, 19세기 작곡가 윌리엄 바그너가 말한 ‘종합예술’의 전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건물에 종속되었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각은 특히 교회 입구의 문과 기둥을 장식했다. 조각으로 장식된 교회 현관에는, 성경의 내용, 전설, 역사 및 기독교 상징들이 결집되어 있다. 중요한 예로서, 셍 라자르 성당의 입구에는 전형적인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장면이 있는데, 그의 발밑에 벌거벗은 채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옥에 갈 사람들은, 예수님 왼편에서 고통가운데 신음하고, 구원받은 영혼들은 오른편에서 기뻐하고 있다. 돌에 새겨진 메세지인 “죄진 자들아 두려워 할 지어라. 이 공포가 실제로 있을 지어다.”에서 알 수 있듯이, 회개와 구원을 전할 목적으로, 최후의 심판에 대한 묘사가 교회 입구에 묘사되었다.
독립된 조각으로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이 성모상이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이 나무 조각상은 ‘지혜의 왕좌’라고 불리는 양식으로 중요한 중세의 기독교 교리를 구현하고 있다.

마리아가 앉아 있는 의자는, 지혜의 왕인 솔로몬을 상징하는 사자의 왕좌를 나타내고 있다. 경직되었다고 할 정도로 정면을 보고, 꼿꼿이 위엄있게 앉아있지만, 실제 인간의 육체를 표현한다고 하기에는 너무 딱딱하고 무표정하다. 예수의 사이즈는 아기 같지만, 어른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고, 성경을 들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고, 예수님은 말씀이 구현된 실체인 것이다.

12세기 경부터 부쩍 확대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경외심을 고취하고자, 교회 행사의 행렬에 이 조각상을 들고 다니곤 하였다. 좌우에 일률적이고 대칭적으로 적용된 옷주름이 더욱 자연스럽지 못한 인체를 강조하는데, 이와같이 인체보다 신성을 부각시킨 것이 중세의 특징이었다. 지나친 성모상의 유행은, 당대의 우상화는 물론이고, 기독교가 아닌 종교가 차용해서 변형시키기까지 하였다. 예를 들면 현재 아이티 등 남미의 많은 곳에서 성모상 등 카톨릭의 제식이나 이미지가 자신들의 토속종교에 편입되어 혼재되어 표현되고 있다. (계속)

▷artriolee@gmail.com
투데이/위크엔드_이정실_셍포이수도원


위크엔드_이정실_Christ in Majesty
사진설명: 19세기에 재건축된 셍 포이 수도원

사진설명: Christ in Majesty, Santa Maria de Tahull, 1123년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