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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 베트남 전쟁의 기억과 한반도

이 길 주 / 버겐커뮤니티칼리지 역사학 교수

2월은 베트남 전쟁 연구자들에게 역사학도답지 못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만약 미국이 그토록 무자비한 북폭(北爆)을 하지 않았다면?" 51년 전인 1965년 2월 린든 존슨 대통령은 북베트남에 대한 지속적인 공중 폭격을 명령했다. 마치 하늘의 징벌이라도 되는 듯 천둥소리란 뜻에서 'The Operation Rolling Thunder'라 명명했다. 1968년 10월까지 약 3년 반 동안 미국은 64만3천 톤의 폭탄을 북베트남에 쏟아 부었다. 나는 '롤링 썬더'를 베트남 전쟁의 주요 패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ABCDEF로 정리한다.

북폭은 미국에게 침략자(Aggressor)의 이미지를 안겨주었다. 베트남은 남북을 막론하고 미개발 농업 국가였다. 여기에 인간이 개발한 최고의 항공기술과 폭발력을 접목해 말 그대로 불덩이가 비처럼 내리게 했다. 특히 전쟁은 남에서 하는데 북을 부수었다.

적의 전의가 꺾일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북폭은 투쟁성(Belligerence)을 강화했을 뿐이다. 폭탄이 더 많이 떨어질수록 호치민의 지도력은 강화됐고 베트콩은 더 악착같이 공격에 임했다.

공중 폭격은 값비싼(Costly) 군사행동이다. '롤링 썬더'에 약 9억 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추산된다. 북베트남이 입은 피해는 3억 달러 정도. 단순 계산으로 투입이 산출의 세 배다. 미국은 비행기 9백 대를 잃었다. 존슨이 약속한 '위대한 사회' 건설 자금으로 거대한 파괴를 했다는 비판의 증표로 '롤링 썬더'만한 것이 없었다.



'롤링 썬더'는 마약 같았다. 갈수록 의존성(Dependency)이 깊어졌다. 처음에는 군대와 물자의 남베트남 침투를 저지할 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공격대상은 늘어갔다. 하노이-하이퐁 주변으로까지 확대됐다. 민간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폭격 작전은 미국과 전통적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소원(Estrangement)케 했다. 동맹들이 미국의 편을 들기에 '롤링 썬더'는 지나친 비대칭 화력 과시였다. 폭격은 해외에서도 반전운동에 불을 지폈고 미국은 외로운 전쟁을 해야 했다.

북폭의 파괴력은 가공했다. 호치민이 대단하기로 북베트남이 연일 계속되는 파괴를 극복하고 전쟁을 지속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았다. 협상 테이블로 나오지 않을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잘못된 시각(False Perception)이었다. 북폭은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일단 폭격부터 중단하라"가 북베트남이 요구하는 선제 조건으로 굳어졌다. 살상의 연결고리는 계속 이어져갔다.

'롤링 썬더'를 떠올리는 이유는 북한의 제4차 핵폭탄 실험 이후 한국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무장론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한 저명 언론인은 한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과단성을 보여야 한다. 일을 저지르고 보자는 것이다"고 했다. "비핵화 선언 폐기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도 각오하자"고 제안했다.

한국의 핵무장은 '롤링 썬더'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핵무장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호전성을 북한은 오히려 환영할 것이다. 한반도 상황을 다시 냉전구도로 되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핵화 의지는 동맹국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의 북폭처럼 한국이 핵무장을 시도하면 핵문제에 관해 한국이 확보한 도덕적 우위가 타격을 입는다. 아무리 다급해도 남북이 핵 확산이란 선상에 같이 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핵 개발은 연인 사이의 스킨십과 같다. 시쳇말로 손만 잡는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메가톤 확대일로로 들어설 것이며 군비경쟁은 불 보듯 뻔하다. 경제적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이 경우 동북아는 준전시 상태로 갈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우리도 핵을 가졌으니 이제 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오도된 인식이다. 듣기 싫지만 핵 개발에 관한한 북한은 한국 보다 몇 수 위다. 핵 기술만이 아니다. 노름판으로 치면 작은 판돈으로 큰 게임에 뛰어드는데 자기 패를 감추는데 베팅의 강약을 조절하는데 또 옆 사람(중국) 패를 읽는데 내공이 쌓였다. 북한이 스스로 이 도박판을 떠나도록 설득하는 것이 지금 한국과 더불어 국제사회가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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