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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예순 넷, 칼날 능선 12시간 오를까"

산악인 김명준 논픽션 우수작 '나의 에베레스트' <1>
에베레스트 사우스콜(South Col)

이번에 연재하는 '나의 에베레스트'는 2006년 김명준(사진)씨의 에베레스트 등반기를 엮은 책으로 지난 2013년 신동아 논픽션 공모전에서 우수작에 선정된 작품이다. 산악인 김명준씨는 '7대륙 최고령 완등자'로 지난 2007년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됐으며 2014년에는 7대륙 최고봉 등정을 포함한 그의 도전을 담은 '라이프 노 리미츠'를 출간하기도 했다.

"노 굿 웨더 위 캔 낫 클라이밍(No good weather We can not climbing)"

내 텐트로 건너온 아파 셰르파(Apa Sherpa)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에베레스트 등반을 계속할 수 없다고. 두꺼운 우모(牛毛)복을 입은 채 침낭 속에 들어가 번데기처럼 웅크리고 있어도 이미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든 지 오래다. 아파 셰르파와 몇 마디 말을 나누느라 산소마스크를 잠시 벗었을 뿐인데도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다.

여기까지가 나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이곳은 신들의 영역이라는 해발 8000m의 사우스 콜이 아닌가. 산소도 지상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죽음의 지대. 인공산소를 마시고 있다 해도 산소가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는 평지와 같을 수는 없다.



이곳 마지막 4캠프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가파르게 이어지는 동남릉은 네팔과 티베트를 가르는 경계다. 동시에 삶과 죽음의 경계이기도 하다. 고산(高山)에서 무리한 욕심은 죽음을 낳는다. 이미 많은 경험과 자료를 통해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가. 첨단 과학이 동원된 점보비행기가 날 수 있는 고도를 나는 순전히 내 발로 올라왔다. 눈앞의 에베레스트 정상을 포기하기엔 억울하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아시아 변방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네팔까지 물리적인 거리도 멀지만 그것만이 억울한 감정의 전부가 아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지난 10년간 지독한 훈련을 해왔다. 마라톤 풀코스를 수십 번 완주했고 주말 훈련 산행을 빼먹지 않았다. 이 산에 오기 직전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고소증에 대비하려고 LA에서 가까운 멕시코 최고봉에도 올랐다. 지금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에서 올 나의 무전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을 동료 이정현과 함께.

이번 등반의 목적에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기록 경신도 포함되어 있다. 훈련 기간을 뺀 지난 6년 동안 여섯 대륙 최고봉을 모조리 올랐다. 1999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963m)에서 시작해 남미 아콩카구아(6959m) 유럽 엘브루스(5642m) 북미 매킨리(6194m) 남극 빈슨매시프(4897m) 오세아니아 칼스텐츠(4884m)를 차례로 올랐다. 이제 아시아의 에베레스트만 남았다. 이 산을 오르기만 한다면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긴 여정에 비로소 끝이 난다.

또한 이곳 8000m 최종 캠프에 닿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 베이스캠프에서 1캠프 2캠프 3캠프를 오르내리며 한 달 넘게 전투처럼 등반해왔다. 정말이지 너무도 안타까운 희생도 있었다. 악마의 입 같았던 얼음폭포 아이스폴에서의 사고. 얼음기둥이 무너지는 바람에 우리 팀 셰르파 두 명을 잃었다. 그런 희생과 고생을 감내하며 겨우 오른 마지막 캠프에서 그만 멈춰야 하다니.

오르고 싶다. 7대륙 최고봉을 모조리 오르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세븐 서밋(Seven Summit)이라고 부른다. 나 역시 세븐 서미터가 되기 위해 에베레스트의 위험에 맞설 의지와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까지다. 히말라야 등반은 하늘이 도와줘야 한다. 아무리 준비가 철저하더라도 오늘처럼 일기가 나쁘면 등반은 끝이다. 눈보라가 계속되면 오르는 것뿐만 아니라 하산조차도 위험천만한 일이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억울하지만 신뢰하는 파트너 아파 셰르파의 경험과 판단을 믿어야 한다. 그는 이미 에베레스트를 15번이나 올랐고 네팔에서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셰르파이기도 하니까.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고산등반에서 욕심은 죽음과 항상 붙어 다닌다. 특히 성층권이 가까운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난다. 네팔에서 불어와 이 고개를 넘어 티베트로 달리는 바람은 쇳소리를 낸다. 물어뜯고 할퀴고 모든 걸 날려 버리려는 바람 탓에 꽁꽁 얼어붙은 텐트는 쉬지 않고 서걱거린다.

두꺼운 침낭 속에 웅크리고 있지만 파고드는 추위는 어쩔 수 없다. 숨 때문에 텐트 안을 온통 코팅시켜 버린 성애가 내 헤드램프 불빛을 받아 별처럼 반짝인다. 따듯한 차 한 잔이 간절하게 그립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하루 종일 굶었다. 낮은 기압 때문에 밥맛도 없지만 오래 전부터 불어터진 입술로 음식을 먹기가 힘들다. 달콤한 사탕을 입에 넣어도 쓴 맛이 난다.

그래. 어쩌면 잘 된 일인지 모른다. 내 나이 예순 네 살. 지금을 위해 단련해온 체력엔 자신 있으나 성공 여부는 모를 일이다. 날이 좋아 예정대로 출발했더라도 밤새워 위험천만한 고공의 칼날 능선을 가야 한다. 12시간쯤 실수 없이 형극의 길을 올라야 정상이다. 무사히 정상에 오른다는 보장도 없으니 억울해하지 말자. 아파 셰르파의 등반 포기 선언은 나를 살리려는 어떤 운명의 계시인지도 모른다. 잠을 잘 형편도 안 되니 가물거리는 정신을 추스르기 위해 무엇이든 생각해야 한다. 그래 이 사우스콜로 올라오기까지 힘들었던 오늘 낮을 생각해보자.

내가 4캠프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였던가? 아니지 2시가 넘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이곳 8000m까지 올라왔지? 불과 몇 시간 전의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나와 함께 오른 셰르파들이 드넓은 사우스콜에 두 동의 텐트를 치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바람을 피한다며 바위에 쪼그리고 앉아 그저 멀건이 그들을 바라만 봤다. 티베트로 넘어가는 미친 바람이 텐트를 빼앗아가려는 듯 세차게 불었다. 텐트는 잔뜩 부풀기만 할 뿐 도무지 작업에 진척이 없었다.

겨우 텐트가 완성됐고 셰르파들은 내게 그 속에 들어가 쉬라고 손짓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침낭 속에서 잠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무중력 속을 헤매는 중이다. 베이스캠프가 그립다. 지금쯤 더그는 베이스캠프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곳을 떠난 지 사흘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사람 좋은 그가 무척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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