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은 정치력 뒤진다' 편견 깬 게 내 훈장"
릴레이 인터뷰 ④ 데이비드 오 필라델피아 광역시의원
"필라는 서울과 닮았다"…한국과 교류하며 발전 추구
미국의 5대 중심도시 필라델피아에서 2011년 한인 최초로 광역시의원 당선. 4년 후 연임 도전에 공화당 예비선거 압도적 1위로 본선거 진출. 공화당 1위로 재선 성공. 올해 취임 5년째를 맞는 데이비드 오(공화·55·한국이름 오승호) 필라델피아 광역시의원의 이력이다. 오 의원은 민주당이 대다수인 동부의 선출직 한인 정치인 15명 가운데 손에 꼽히는 공화당 정치인이자 한인 2세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재선에 성공하며 전통적 민주당파 필라에서 ‘아시안 공화당 정치인’이라는 난관을 ‘자랑스런 이름표’로 바꿨다. 이제는 베테랑 정치인의 진입로에 들어선 오 의원의 지난 여정과 새해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시정부가 공인하는 공화당 한인 정치인=오 의원에게 지난 4년은 끊임없는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인구 155만 가운데 한인은 단 4% 밖에 안 되는 필라에서 아시안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고된 시간이었다.
오 의원은 “특히 지난해 재선 도전 시절 가장 크게 좌절했다”며 “지역 언론을 비롯한 유권자들은 필라 정치계의 ‘신기류’인 한인이라는 이유로 '정치력이 떨어진다'며 가혹한 공격을 가했다”고 지난 시절을 회고했다. 오 의원의 과거 군 복무 경험 등 경력 위조에 대한 공격까지 무차별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비선거와 본선거 모두 공화당 1위로 결국 당당히 재선에 성공하며 이제는 시정부도 공공연히 인정하는 필라의 아시안, 한인 정치인이 됐다”며 “이제는 지난 4년간 다져놓은 정치력을 바탕으로 미처 이루지 못한 정책들을 실현시킬 일만 남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 의원은 지난해 11월 본선거에서 3만4297표를 획득, 득표율 3.82%로 공화당 후보 1위로 재선에 골인했다. “이제 필라에서 ‘아시안은 정치력이 떨어진다’는 옛말이 돼가고 있다”는 게 오 의원이 아시안 정치인으로서 이룬 가장 큰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주의회에는 총 세 명의 아시안 정치인이 있다. 나를 비롯해 헬렌 김 필라 광역시의원과 패티 김 펜주하원의원 모두 한인이다”며 “한인이 지역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적극적으로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한인들은 문화적으로 위험 감수에 대한 의지가 높은 편인데 결국 이러한 성향이 정치계에서 승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도전하는 경향으로 연결되면서 어느 순간 빛을 발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쟁 도시 필라로=오 의원은 현재 시의회 국제기회 및 창조혁신경제 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법조계에서 활동했던 1999년 탐 리지 펜주지사 시절 아시아 국가와의 무역 사절단 한국 담당관으로 활동했던 까닭일까, 그는 “필라는 한국의 서울과 많이 닮았다”며 “필라 경제를 구상하며 서울을 자주 머리에 연상한다”고 말했다. 펜주 한국 무역 사절단을 이끌며 오 의원은 한국 대통령과 주요 대기업 대표들과 펜주지사와의 회동을 이끌면서 모국인 한국을 알아갔다.
오 의원은 “서울과 인천 송도처럼 필라에도 활발한 국제 무역과 투자를 이끌어 내 글로벌 경쟁력이 높은 도시로 발전시키겠다”고 올해 포부를 다짐했다. 이 외에도 글로벌 시스템 채택을 통한 공교육 개선, 국제투자기금 창설, 세제 시스템 간소화 등을 올해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필라는 나의 모든 것=필라는 오 의원에게 정치인으로서만 특별한 건 아니다. “출생부터 필라 토박이”이라는 오 의원에게 필라는 가족들의 깊은 슬픔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도미 후 필라에 정착한 오 의원의 아버지 고 오기항 목사는 오 의원이 태어나기 전 1953년 필라에 첫 한인교회를 설립했다. 필라 한인사회에 긍정의 변화가 찾아오는가 했다. 그러던 중 1958년 당시 오 의원의 아버지와 같은 아파트에 살며 유펜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던 오 의원의 사촌형 오인호씨가 흑인 10대 청소년들에게 느닷없이 집단폭행 당하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흑인 청소년들은 파티 입장권을 사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사촌형을 무차별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가해 학생들에 대한 선처를 구하는 편지를 시정부에 보내며 이들을 용서하고자 했다.
오 의원의 가족들이 타민족에 보낸 용서는 지역사회에 큰 귀감이 됐다. 가족들이 시정부에 교육 빈곤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위한 성금을 보내자 이를 통해 시정부는 숨진 사촌형의 이름을 딴 ‘오인호기념장학금’을 설립했다. 또 필라에 첫 한인교회를 개척했던 오 의원의 아버지는 사촌형을 추모하는 커뮤니티서비스센터를 건립해 한인 2세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를 교육하고 아시안들에게는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렇게 오 의원은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가족들을 보며 사회봉사를 익혔다. 아버지가 첫 한인교회를 개척했듯이 그는 지난 2014년 필라에 한인의 날(매년 1월 13일)을 제정했다. 그는 “뼛속까지 지역사회 봉사를 익혔던 때문일까, 항상 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며 “결국 변호사·검사·시의원 이 셋을 통해 가족의 뿌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목사가 될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오 의원은 로스쿨 재학 시절 무료 법률 상담 자원봉사자로 활동했으며 졸업 후엔 약 3년간 필라 지방검사로 활동했다. 이후 육군에 입대해 소위로 제대 후 로펌을 설립, 18년간 변호사로 활동한 것이 발판이 돼 한인 최초로 지금의 광역시의원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필라에 대해 오 의원은 “가족의 아픈 역사가 있는 필라에서 시작해 필라에서 끝을 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취임 5년째인 올해는 다가오는 13일 시정부 청사에서 열리는 필라 한인의 날이 유난히 기다려지는 해”라며 “네 아이의 아버지이자 시의원으로서 필라의 기둥이 되고 한인 정치인으로서 귀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올해는 대통령 선거의 해로 특히 정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지난해 오하이오주 공화당전당대회에서 '떠오르는 공화당 리더' 자격으로 패널에 참석했는데 앞으로 내놓는 필라 정책에 따라 대선 관련 활동을 펼칠 수도 있기 때문에 향후 움직임을 잘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오=1960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출생. 1982년 딕킨슨칼리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5년 럿거스대 캠든캠퍼스 로스쿨 졸업. 1985~1988년 필라델피아 지방검사. 1988~1991년 육군 입대 후 소위로 제대. 1991년 로펌 ‘데이비드 오 P.C.’ 설립. 1999년 펜주지사실 산하 한국 무역 사절단 조직. 2008~2012년 대형 로펌 ‘자윈 바움’에서 국제법률그룹 위원장. 2012년~현재 필라델피아 광역시의원 및 시의회 국제기회 및 창조혁신경제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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