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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오리건문인협회)

9 퍼센트의 삶

구십이 넘은 엄마가 보고 싶어 하와이에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기대고 의지하고 싶었던 엄마였는데, 올 때마다 달라지는 행동과 얼굴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을 느끼게 해준다. 요즈음 하와이에 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차츰차츰 줄어든다.

엄마와 나의 행동반경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늘 엄마 옆에서 친구처럼 도와주신 고마운 분들과 식사를 하는 것 이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어진다. 전에는 동이 트는 와이키키 해변도 걸었고, 야자수 밑에 앉아 정성껏 가지고 온 색색 가지의 음식을 모래 위에 펼쳐 놓고 최고의 만찬을 즐기며 큰소리로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때로는 넓은 쇼핑센터를 휘저으면서 희희낙락 마냥 즐겁게 다녔는데, 지금은 시장에서 무거운 쌀이나 가루비누를 사오는 것 이외에는 많은 것을 같이 할 수가 없다.

엄마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나는 책을 읽고 엄마는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도 아직 정신을 놓지 않고 글을 쓰겠다는 의지력 강한 엄마의 모습이다.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보면 손에 만년필을 쥐고 숨 소리 높이며 새우 낮잠을 자고 계시기도 하다. 별을 좋아하고, 비를 좋아하고, 눈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는 감정이 풍부한 엄마다. 이젠 삶의 무거운 멍에를 내려놓든지 오래다. 몸은 쇠약해지고 비 맞고 떨어진 가랑잎처럼 생명의 불꽃이 시들어 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볼수록 눈물이 난다.

한국의 연령별 인구 통계를 본 적이 있다.
현재 당신이 75세라면 8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56%
8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28%,
9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9%라는 조사 보고서다.

즉 90세가 되면 100명 중에서 91명은 저세상으로 가고 9명만 생존한다는 계산이다. 9% 내에 든 엄마는 혼자 사시면서 글을 쓰고, 잔명도 없어, 너무 감사 할 뿐이다.

엄마와 헤어지기 전날 동생 부부와 함께 오아우섬을 한 바퀴 돌았다. 돛단배들이 많이 보이는 바닷가 작은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모래밭에 앉아 동생이 타는 설핑 (Surfing)을 구경했다. 동생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각별했다. 자식 사랑은 다 같다고 하지만, 우리 엄마에게 그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동생에 대한 사랑은 사랑을 넘어 집념 으로 굳어져 있다. 차 만 타면 피곤한 눈을 감고 금방 잠이 드는 엄마지만 동생의 차를 타면 행동 하나하나, 말소리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야단이다. 침침한 눈은 광채가 나고 얼굴에는 희색이 돈다. 그런 아들이 옆에 있고, 먼 곳에서 딸까지 왔으니 엄마는 소풍 가는 어린애같이 마냥 즐겁고 기쁘기만 하다. 하늘도 푸르고 햇살도 눈부셔 출렁이는 파도 위를 나르는 갈매기도 그림 같다. 그곳에 자식들과 함께 있는 엄마의 마음은 구름 위로 나르는 풍선같이 하늘을 오르는 것 같다. 자식이 무엇이기에 목마른 화초처럼 자식들을 기다리는가. 시들었던 화초가 물을 마시고 생기를 찾고 꽃까지 피우듯이 - 우리들을 보는 것으로 자양분을 느끼는 엄마가 애초롭기 그지없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 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지는 해를 어이 막을 수 있으랴. 보기에도 황혼빛으로 기우는 엄마의 내리막 인생은 너무 슬퍼 보인다. 볼수록 코끝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메어온다. 개울물 흐르듯 졸졸 흘러간 세월. 창문 사이로 들어온 오후의 햇살이 엄마의 하얀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내일을 설계할 수 없는 빈 마음의 삶. 한숨과 그리움만 있는 오늘이다. 욕심이 있어야 욕망도 생길텐데 목적 없는 기다림만 있을 뿐이다. 오늘은 자식이 찾아올까? 어느 친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 올까? 아냐, 비가 와서 못 오겠지, 바람이 불어서 못 오겠지! 방안에 놓인 인형하고 미소 지으며 화초하고 대화하고 글을 벗 삼아 지내는 엄마.

엄마, 찾아오는 사람 없어도, 너무 슬퍼하지 마. 친구들이 찾아오면, 물론 기쁨도 있고 따뜻한 위로도 되지만 헤어질 때는 섭섭하고 또 외로워지잖어. 사람을 통하여 얻는 행복은 사람을 통해 슬퍼지기 때문이야. 볼 수있고 듣을 수가 있는 많은 친구가 엄마 곁에 있잖아. 뒷창문 열면 전 나무도 변함없이 엄마를 반기고 앞마당에는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는 플루메리아 꽃도 있고, 방에는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눈을 떼지 않는 금붕어도 있고, 아침이면 베란다 앞 오캣꽃을 찾아오는 나비도 있잖어, 엄마에게 그런 하루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해!

아직 밖은 깜깜하다. 지친 가로 등만 희미하게 거리를 서성 거린다.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일찍 서둘러 나왔다. 엄마는 등 뒤에서 울고 있었다. 자동차 뒷거울에 희미하게 보이는 엄마의 몸체가 점점 작아진다. 울음소리는 점점 크게 들린다. 나는 지금 9%의 삶을 뒤에 두고 떠나는 중이다.

위로의 말 대신 나도 울며 혼자 중얼거렸다. 외로워도 참아. 그래도 엄마는 남들이 그리도 살고 싶어하는 9%의 삶을 지금 즐기잖아.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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