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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생의 교실 밖 세상] 나를 돌아보는 과정 있어야 성장 해…자신에게 질문하고 답 찾는 해 되길

지경희 카운슬러/LA고등학교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못 읽고 있다가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읽으면서 그간 내가 많은 여행을 하며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을 하나씩 마주하는 기쁨을 누렸다. 2011년 여름, 스페인 산티아고로 순례여행을 다녀온 직후 나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잔재미가 심드렁해졌던 기억이 있다. 29일 동안 걸으며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들이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순례 길을 걸으며 나는 '왜 이 길을 걷는가'라는 생각을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까지 하고 또 했었다.'왜 나는 이러한 두려움 속에서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지', '나는 왜 매번 그런 질문을 안고 또 여정을 시작하는 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피레네산맥을 넘어가며 만난 폭풍우 속에서 신발에 물이 차서 떨그럭거리고 사방으로 내리치는 비바람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았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산길을 헤집으면서도 저 멀리 보이는 하얀 불빛의 알베르게(숙소)를 향해 걷고 또 걸었었다. 거기가 그날의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파울로 코엘료가 묵었던 숙소에서 그가 창밖 넘어 보이는 황량한 들판에서 가졌던 생각은 무엇이었으며 그는 그 생각들을 어떻게 그의 삶 속으로 맞이했을까 하는 생각들을 걷는 내내 했더랬다. 아름다운 밀밭 길 사이로 걸어가면서도 나는 내가 왜 걷는지 생각했고, 눈앞에 온통 해바라기꽃이 지천인 꽃밭을 걸으면서도, 한낮 땡볕의 허허 벌판에서 혼자 줄달음질 치면서도 나는 그 질문과 사투를 벌였었다. 그래도 풀리지 않던 질긴 그 인연을 우연하게 마주한 책을 통해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정리할 수 있었다.

"굴욕은 인간세계에서는 항상 마주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의 의지가 도전을 받고 우리의 소망이 좌절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따라서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숭고한 풍경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P215, L 14)



순례여행을 마치고 나는 내 자신의 한계에 맞부닥쳐서 겨우 목숨부지하고 돌아와서 느꼈던 감정, 그리고 대자연 앞에서 가졌던 신비로운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제 다시 정리해보니 그러한 감정마저도 나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자연이란 거대함에 머리 숙이고 그렇게 낮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연의 도움을 받아 그런 경험을 통해 매일 새로워지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통해 한 뼘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처한 이 환경에서 잠시 탈출하여 내 자리를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쉼을 가졌다는 것이다.

"여행이란 우리가 가지는 경험에서 이제까지 무시해 왔던 넓은 영역 위를 날아볼 수도 있고 일상적인 일 속에서는 이르지 못했던 높이에서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는 주위의 낯선 세계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P 81, L 7)

내게 익숙지 않은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그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이웃들과 낯선 장소, 그리고 자연은 나를 성장케 한 촉매제였다. 길을 걸으며 내 시선에 들어왔던 들꽃 하나도 내가 잠시 멈추고 바라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마지막에 니체의 말을 인용한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소수(극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한다'는 그 말을 곱씹는다.

별 기대하지 않았던 책에서 기대 이상의 수확을 올려서 나는 그 기운을 받아 학생들과 남은 한 학기 전쟁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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