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잊을 수 없는 전장의 성탄절


김 효석 목사(워싱턴주 Fort Lewis Madigan Army Medical Center군목)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엔 갖가지 추억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때론 그러한 추억들로 인해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제게는 아마도 평생 결코 잊을 수 없는 성탄과 연관된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2013년 7월 저는 텍사스의 포트 후드에 있는 기갑부대의 대대군목으로, 약 1000여 명의 병사들과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을 가게 되었습니다...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약 3주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저희들이 어떤 미션을 받게 되고, 어느 지역으로 배치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회의 끝에 약 두 달여를 FOB Airborne라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었고, 그 이후 단계적으로 FOB Ghazni라는 기지로 옮겨 지속적인 미션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FOB Ghazni는 폴란드 군인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기지였으며, 저희 병력과 다른 여러 다른 미션을 수행하는 부대원들과 미군무원들, 그리고 계약업자들을 포함 우리 측이 대략 1500여명, 폴란드 군이 약 1500명으로 총 3000여명 정도가 주둔하는 곳이었습니다.

폴란드 군은 거의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들이었기에 천주교 군목이 같이 파병을 와 있었고, 저희는 아프간에서 병력을 줄여가는 과정이라 제가 가기 전에는 두 명의 미군목이 함께 사역을 이어가다가 저희가 그 기지를 인수하게 되면서, 제가 유일한 미군목으로 그 기지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성탄을 앞두고 있었고, 저는 교회 성도들에게 성탄절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주겠노라고 선포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식당텐트 앞에 늘어선 줄에서 자주 만나 얼굴이 익숙한 한 분을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식당에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늘 웃으면서 기지를 돌아다니는 작은 아시안 군목이었기에 저희 병사들과 다른 군무원 및 계약업자들은 자연스레 저를 'Happy chappy' 라고 부르고 있었고, 저는 자주 만나게 되는 그 분께 기독교인이냐고 물어보았고 그의 긍정의 대답에 주일예배가 있는데 주일예배에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램을 비치니, 긍정의 대답이 돌아와서 저는 순수한 마음에 그 분을 만났던 주일마다 그 분을 기다렸지만, 그 분은 단 한번도 예배시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성탄 이틀 전 병사들로 가득 찬 식당텐트 안에서 그 분을 보았으나 여러 번의 약속 어김에 마음이 상한 저는 그 분을 보고도 인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었음에도, 다른 병사들에 밀리고 밀려 어쩔 수 없이 그 분 앞을 통과해야만 출구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과 저는 숙명(?)처럼 바로 코 앞에서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그 분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이렇게 인사하였습니다. "Hello, sir. Happy holiday!" 그랬더니 그 분은 정색을 하시면서, "Hey, Chaplain Kim. You should have said to me 'Merry Christmas!'" 그 때 저는 반문을 했습니다,

"Sir, are you a Christian?" 그 분이 아주 확고히 대답합니다, "Yes, I am." 저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Really? If so, I invite you to a Christmas service at 11:00 a.m. in the chapel on Christmas Day. Can you come join us to celebrate it?" 그 분은 자신 있게 오겠노라고 약속을 하였고, 저는 꼭 당신을 기다리겠다고 미소는 지었지만 진지함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마쳤습니다.

성탄 당일을 위해 저와 저의 군종병은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였고, 주로 흑인 형제 자매들로 구성된 찬양팀은 매일 저녁 연습을 하면서 약 16곡을 준비하였습니다. 평소엔 주일오전 예배에 10-2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고, 저녁예배엔 근무를 마치고 오는 지체들 30-40여 명이 함께 모여 은혜의 예배를 드렸지만, 저의 기도는 이 전쟁터에서 훨씬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성탄을 축하하는 예배를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성탄절 당일 시간이 되자 앞자리로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채우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목회자로서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찬양팀의 16곡 발표가 다 끝나고 드디어 저의 설교차례...성전에 가득 찬 인원을 대강 헤아려보니 어림잡아 약 150-170명 정도가 자리에 앉아있는데, 내 마음에 기쁨이 가득했지만 혹시라도 식당텐트에서 보았던 그 분이 자리에 있을까 일일이 얼굴을 스캔해보니, 그 분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실망감과 이번에도 역시나 라는 마음으로 설교를 시작하였는데, 약 5분 정도가 지나자 성전문이 삐거덕하고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오는데...놀랍게도 그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고, 약속을 지킨 모습에 힘을 얻은 저는 더 힘차게 설교를 이어갔습니다.

맨 뒷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저를 지켜보던 그 분은 처음엔 제가 미덥지 않았나 봅니다. 마치, "이 동양친구가 설교는 제대로 할라나?" 라는 모습으로 지켜보던 그 분은 약 5분이 지나자 팔짱을 풀고 제 설교를 경청하기 시작하였고, 잠시 후 자리를 한 칸 앞으로 옮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칸 한 칸 앞으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 분의 모습은 점점 더 진지하게 변하였습니다.

저는 그 날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그 분의 모습만 클로즈 업 되어서 보이게 되었고, 감사함 가운데 설교와 예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좋았던 저는 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제안을 하였고, 사진 촬영 후 선물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죠.

그 분이 맨 마지막에 제 앞에 와서 악수를 하며 오늘 성탄예배가 참 은혜가 되었고, 앞으로 주일마다 예배에 오고 싶다고 말을 할 때, 목회자로서 참으로 큰 힘을 얻었습니다. 포옹으로 약속을 지킨 그 분에게 감사를 전하였고, 저는 기분 좋게 저희 텐트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저희 대대는 미국으로 복귀를 약 세 달여를 남겨놓고 있었기에, 저는 'Redeployment Brief'라는 것을 본부 중대 병사들에게 약 1시간에 걸쳐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때 저희 군종병이 문을 급하게 열고 들어오며 저에게 사인을 보내는 겁니다. 참고로 저희 기지에서 미군 및 군무원 등 어느 누구에게 일이 발생하면 제가 유일한 미군목 이었기에 보고가 가장 빨리 되어야 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교육을 잠시 멈추고 군종병의 얘기를 듣는데, 한 미군 계약직원이 그 날
아침 트레드 밀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일단 저와 군종병은 교육을 잠시 멈춘 채로 의무대로 달려가고 있었고, 제 머리에는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약 1500명이나 되는 인원 중에 과연 어떤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등졌을까... 잠시 후 의무대에 도착한 저는 저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어제 저와 약속을 지켰던 그 분이 누워있는 겁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 때 이 분과 함께 근무하며 이 분을 전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한 흑인 소령 자매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자매가 성탄예배 후 이 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 분은 성탄예배 후 저녁시간에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이 오늘 성탄예배를 드렸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 아내의 반응은, "거짓말 하지마. 지난 24년 동안 당신을 위해서 기도해 왔는데, 당신은 단 한번도 교회에 나가지 않았는데, 거기서 성탄예배를 드렸다고...그 말을 믿으라는 말이야?" 이 분은 답변했답니다, "오늘 정말 성탄예배를 나갔고 은혜를 받았고, 이제부터는 주일예배를 꼭 드릴거야. 믿어줘!"

그 소령자매의 얘기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엄청난 충격이 엄습해 옴을 느꼈습니다. "오늘 드리는 이 예배가 내 인생의 마지막 설교라면...나는 과연 가볍게 설교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예배라면 과연 나는 이 예배를 가벼이 여기며 예배에 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분은 자신이 24년 만에 탕자와 같은 모습 속에서 극적으로 돌아온 다음날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 사건이 있은 후 예배에 임하는 저의 자세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의 성탄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으로 제 기억에 남아 있으며, 동시에 늘 제 안의 게으름과 연약함을 바로 세우는 소중한 간증이 되고 있습니다.

(김효석 목사: 성결대 신학과 졸업, 서울신대 M.Div,
Pittsburg State University, Master of Science for TESOL
Boston University, Master of Sacred Theology for Liturgy
368공병대대 군목, 12개월 아프가니스탄 파병, 칸다하르 지역
Fort Hood 1-5 보병전차대대 군목,
아프가니스탄 파병, 가즈니 지역,
동두천 소재 캠프 케이시 4-7 수색전차대대 주한미군 군목
현재 Fort Lewis Madigan Army Medical Center 에서 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 이수중
(김효석목사) (아프가니스탄 파병 때)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