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산책] 김치 담가 나눠주는 행복
혜민/스님
"그럼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라고 다시 물으면 본인들 각자가 목표한 것들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나면 행복할 것이라고 답한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의 경우에는 아이의 입시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행복할 것 같다 하고, 직장을 다니는 경우에는 올해 자신의 승진 발표가 나오면 안심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다. 회사를 운영하거나 장사를 하시는 분들 같은 경우에는 매출이 목표한 만큼 나오면 행복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성장 중심으로만 행복의 기준을 삼으면 곧 문제가 생긴다. 원했던 목표가 이루어지고 나면 엄청 행복할 줄 알았는데 기쁜 마음은 아주 잠시이고, 바로 또다시 그것보다 더 높은 목표로 자동 상향 조정되기 때문이다.
'통장에 돈이 500만원만 있으면 참 행복할 텐데…' 하며 지금 그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여기는 영숙씨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영숙씨는 행복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근검절약했고 드디어 통장에 500만원이 모였다. 그 순간 영숙씨는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뿌듯하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500만원 가지고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느낌,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1000만원을 향해 열심히 달리자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또 2000만원, 5000만원, 1억원….
이처럼 목표가 이루어지고 나면 진정한 행복이 올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자칫 평생을 만족할 줄 모르고 정신 없이 뛰게 만들 뿐 한순간도 마음 편할 날이 없게 만든다. 잠시라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고 몸이야 병이 들든 말든 끊임없이 생산을 해내라고 종용하는 자본주의 마인드를 종교처럼 맹신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 지향적인 행복관을 가지고 있는 한 '지금 현재'의 행복은 내 것이 아니다. 멀리 있는 신기루 속 미래를 위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견디고 있을 뿐이다. 과정을 즐길 여유도 없이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기에 내 몸에 얼마나 큰 무리가 찾아오는지 살피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홀해지며, 스스로를 외로움과 고립감으로 밀어 넣는다.
그렇다면 목표가 달성되는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나와 내 주변 사람들 간에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과정 속에서 느끼게 된다. 우리 인간은 온 우주와 연결된 존재다. 그래서 끊임없이 세상과 순환하면서 연결감을 느낄 때 몸은 건강해지고 마음은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높고 외모가 출중해도 혼자 고립되어 외롭게 생활한다면 결코 행복감을 느낄 수가 없다. 반대로 물질적으로는 별로 가진 것 없이 평범해도 주말 저녁마다 나를 불러주는 친구들이 있고, 아프면 찾아오는 지인들이 많으면 마음속에 따뜻한 행복감이 번진다.
즉 행복은 먼 미래나 거창한 무언가에 있는 게 아니라 지인들을 만나 밥을 먹으면서 손뼉 치고 웃는 그 순간 속에 있다. 김치를 담갔는데 맛보라고 몇 포기 보내 준 친구의 마음 씀씀이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손에 쥔 것들을 남들과 나누어서 순환시킬 줄 알아야 한다. 가진 것이 있으면 먼저 베풀고, 내 마음의 힘든 부분도 감추지 말고 먼저 꺼내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목적이 없이 같이 있는 그 자체가 좋은 만남, 서로서로 따뜻한 연결감을 느끼게 하는 관계가 우리의 존재를 풍성하고도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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