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맞선 40대 김영삼… 미주에서 민주화 결의 불태우다
1975년 신민당 총재 재임시 미주 방문한 사진 발굴 돼
이 사진들은 당시 창간 1주년이던 LA중앙일보가 찍은 것으로 YS의 거침없고 당당한 40대 모습이 생생하다. YS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반대투쟁에 맞서 유신헌법과 대통령 신임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내용의 미주 중앙일보를 읽는 모습이 사뭇 비장하다.(사진 아래)
또 한 장의 사진은 ‘민주회복 투사 김영삼 총재’라는 한글과 ‘우리의 용감한 투사 김영삼 총재를 환영한다’는 영문 환영 배너를 들고 미주 한인들이 YS를 환영하는 모습. 왼쪽으로 YS의 측근 최형우 전 의원이 보인다.(사진 위) 최 전 의원은 이번 YS의 빈소에서 털썩 주저앉아 통곡하는 모습을 보여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날인 23일 본사를 찾은 신동기씨는 1972년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김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 대해 회고했다. 신씨는 “포용력이 있고 친화력이 아주 강한 분이셨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도 강하셔서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당시 그 결연한 얼굴이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신 씨는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시국강연회를 열고 있을때 한국에서는 유신헌법이 발표됐다”며 “국내 정세가 좋지 않아 일본에 계시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망명길에 올랐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많은 지지자들의 만류에도 귀국길에 오르셨을 만큼 강단이 있었던 분”이라고 덧붙였다.
71년 도미해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던 신씨는 당시 중앙정보부의 활약(?)덕에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개인경호를 맡게 됐고, 매일 아침 금문공원에서 조깅도 함께 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워낙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분이라 매일 아침 1시간씩 조깅을 하셨는데 어찌나 빠르던지 다른 사람들은 쫓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며 “운동을 하던 나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었다”고 추억했다.
신씨는 이것이 인연이 돼 80년대에 김영삼 전 대통령 지지 모임인 민주산악회 SF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노승우, 김충일, 정윤철씨와 의기투합해 함께 활동했고 87년, 92년 대선때에는 한국의 전화번호부에서 주소를 찾아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뽑아달라는 호소문을 우편으로 수천통씩 보내기도 했다.
이후 노승우씨와 김충일씨는 귀국해 김 전 대통령을 도와 국회의원을 지냈고, 병원을 운영하던 정윤철씨는 김영삼 정부시절 청와대 의무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신씨는 “1972년 방문 당시 경호를 하다 보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항상 조국의 민주화에 대해 얘기를 하셨다. 그런 열정이 군사정권을 종식 시키고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며 “이제 모든일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편안히 눈을 감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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