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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인터뷰] 올해 열네살 '사랑의 담요' 입니다

나 '사랑의 담요'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2002년 12월10일이다. LA다운타운 샌피드로와 6가 인근에서 ‘노숙자 돕기 사랑의 담요 기증 행사’라는 긴 이름으로 태어났다. 첫 날 부터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쌀쌀한 날씨에도 수백명이 긴 줄을 만들었고, 이런 모습은 뉴스였다.

3주 후면 벌써 열네살이 된다. 그동안 많은 노숙자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신문지와 박스 한장으로 추운 겨울을 버터야 하는 그들에겐 내가 고마운 존재였나 보다. 나를 만난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감사합니다(Thank You)’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쁜 표정을 보면 나도 즐겁다. 누구에게 감사의 대상의 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감사'의 힘은 행동반경도 넓혔다. 롱비치,리버사이드 등 LA 인근 지역은 물론 라스베이거스,하와이,시카고,애틀랜타,뉴욕, 워싱턴DC에도 다녀왔다. 그 뿐이 아니다.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와 미얀마, 한국과 북한도 가 봤다. 잊을 수 없는 일들도 많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지금도 지역 경찰들이 기금 모금에 앞장서고 있고, 시카고에서는 흑인 빈민지역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한인 목사님도 만났다.

몇 년 전엔 북한의 보육원과 한국의 서울역 앞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멕시코에선 가난에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선물이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어림잡아 10만장이 넘는 나의 분신들이 가난한 이들의 추위를 막아주고 있다.



나의 성장은 많은 분들의 후원 덕분이다. 새벽기도회에서 모은 헌금을 보내준 목사님, 은행 후원금에 개인돈까지 더해 지원해 준 행장님, 수년간 기금을 보내준 사장님…. 어디 그뿐인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의 '쌈짓돈 정성'들도 많았다. 대부분이 이름을 밝히지 않는 분들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이 줄잡아 700여명은 되는 것 같다. 이번 기회를 빌어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 연말이 다가온다. 내가 다시 활약할 시기가 된 것이다. 나를 보고 반가워 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렌다. 더욱이 요즘 길거리에는 노숙자가 더 자주 눈에 띈다. 경기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올해는 그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위에 떠는 이들에
집을 선물하는 것”


14년째 '사랑의 담요' 행사 이끄는 김홍수 우리방송 회장

“담요 한장이지만 그들에겐 집과도 같은 것입니다.”

2002년 부터 ‘사랑의 담요’ 나눠주기를 이끌고 있는 김홍수 우리방송 회장은 사실 올해는 행사를 쉬려고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더라는 것. 그런데 주변의 잇단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올해는 (행사)안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계속 받았어요. 세번째까지는 눈 딱 감고 버텼는데 그 다음부터는 차마 외면하지 못하겠더라구요.” 특히 멕시코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의 “담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바쁘고 힘은 들지만 강행키로 마음을 먹었다.

김 회장이 ‘사랑의 담요’를 시작한 것은 개인적인 시련이 계기가 됐다. 담요 도매업을 하던 2000년대 초 롱비치항의 파업사태로 한국에서 온 물건들이 제때 통관이 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팔 물건이 없으니 당연히 그해 장사는 공을 쳤다.

“하루는 LA타운타운 인근의 창고에 들렀다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침을 먹었어요. 그런데 차창 밖으로 노숙자 텐트가 보이더군요. 유심히 봤더니 신문지로 이불을 대신하고 있더라구요. 평소 같았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텐데 내가 어려움에 처하니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92년 LA폭동때의 기억도 떠올랐다. 제법 큰 규모의 리커스토어를 인수 2년 만에 약탈과 방화로 잃었고, 믿고 있던 보험회사마저 파산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빈텉털이가 됐다. 그야말로 길거리에 나 앉을 판이었다.

“당시 모르는 분들로 부터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눈물나게 고마웠지요. 그런 고마움을 되돌려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창 밖의 노숙자들을 보는 순간 내게 돈은 없지만 담요는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려운 이웃들에게 준다’는 의미를 담은 ‘사랑의 담요’는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 두번은 김 회장이 혼자하다시피 했지만 3회 행사부터 후원자들의 참여가 늘면서 판도 커졌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분들 덕분이죠. 특히 매년 행사 호스트를 맡아주신 분들과 무명으로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렵게 준비한 행사 때마다 담요를 받아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피로를 잊었다. 그중에서도 몇 몇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담요를 받고 울먹이며 본인이 갖고 있던 새신발 박스를 쑥스러운 듯 내밀던 노숙자, 준비했던 담요가 다 떨어져가자 행렬 중간에서 "저 한국사람인데요"라고 외쳤던 한인여성…. 그때마다 ‘사랑의 담요 시작하길 정말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숙자를 돕는 일에 조금은 부정적인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 겨울 한철 지낼 수 있는 집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에게 사회의 따뜻함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폭동 당시 생면부지의 분들로 부터 도움을 받고 고마움을 느꼈듯 그들도 언젠가 재기를 하면 비슷한 마음을 갖지 않을까요? 그러면 그들도 누구에게 이를 돌려주려 할 것이고, 이런 순환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김 회장은 올해도 ‘사랑의 담요’를 받아들고 기뻐할 표정들을 그려본다.

담요 한장의 기부금은 15달러다.

▶문의:(213)674-5900

김동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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