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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유혹 경계해야"

죽음에 대한 계몽이 먼저
잘못하면 악용될 위험도

당사자가 잘 결정하도록
철저한 교육이 선행돼야
존엄사 부추기는 건 우려
의료계에서도 의견 갈려


지난 10월 제리 브라운 가주 주지사가 서명함으로써 미국에서 5번째로 존엄사가 법(End of Life Option Act)으로 허용된 주가 되었다. 2016년 시행을 앞두고 의견들이 이미 분분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 대하고 있는 안상훈 LA암센터 암전문의, 류모니카 카이저병원 방사선 암전문의,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R.N.)과 조동혁 신장내과 전문의와 함께 의견을 나눠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시행될 존엄사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안상훈) 18세 이상인 환자가 2명의 의사로부터 6개월 이상 살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을 때 순전히 본인이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상태에서 15일 이상 간격을 두고 2차례 구두로 존엄사를 희망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 다음 2명의 증인이 보는 앞에서 존엄사를 원한다는 것을 글로 한 번 적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존엄사 신청서를 2명의 증인이 보는 앞에서 직접 작성하여 이것을 본인이 담당의사에게 전해주는 것이 일 단계의 절차이다. 의사는 위의 진행과정들에 하자가 없는 지를 확인한 다음에 약을 처방하여 직접 환자에게 건네준다. 환자는 이 처방을 갖고 약을 구입한 후 누가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순수히 자신의 손으로 먹는 것이 이번 존엄사법의 큰 윤곽이다."



"(유분자) 지금 우리 소망 소사이어티에서 해오고 있는 '아름다운 죽음 준비하기'와는 그래서 실제의 내용에 차이가 있다. 당사자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마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치료를 원치않은 상태에서 서서히 평화롭고 또 마음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말기환자의 경우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어느 단계에서 튜브를 뽑아달라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통과된 존엄사법은 우리와 같은 자연사(소극적인 안락사)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액티브하게 약을 본인이 먹음으로써 자신의 생을 자의로 마감할 수 있다. 적극적인 안락사라고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류모니카) 미국에서 1997년에 처음 시행된 오리건주를 보면 2012년에 122명에게 약 처방을 해주었는데 실제로 이 약을 본인이 먹고 생을 마감한 사람은 71명으로 나타났다. 70% 정도가 실제로 본인이 먹고 사망했지만 30%는 자신이 결정해서 약 처방까지 받았지만 막상 그 순간에 마음이 변했음을 말해준다. 지금 이미 실행되고 있는 오리건주를 비롯한 워싱턴주, 몬타나주, 버몬트주의 평균적인 약 복용률은 0.2%~0.3%이다. 이 같은 비율은 미국 외에 존엄사법을 갖고 있는 네덜란드(최초 시행국), 독일, 스위스 등에서도 비슷한 상태다."

-이 법이 환자와 의료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나.

"(안) 둘 다 영향은 미칠 것이다. 암 4기로 치료가 불가능할 때 호스피스를 권하면 환자 쪽에서는 이제 죽는 것만 기다리라는 것이구나 하면서 절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상태에서 스스로 죽음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환자는 한순간의 감정으로 섣불리 선택할 위험소지가 있을 수 있다. 지금은 호스피스와 특히 고통을 줄여주는 증상완화치료가 많이 개발되었다. 호스피스를 권한다고 해서 반드시 곧 죽음을 뜻하지 않고 또 고통 그 차제만도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통증완화치료제에 대한 개발 노력이 이로 인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암전문의로서 앞선다."

"(조)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진료하고 있을 때 12개 응급실 중에서 반 정도가 회복되기 힘든 상태에서 튜브에 의존하는 환자들이었다. 이런 환자들은 물론 특히 가족들에게는 약을 먹고 그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당연히 가질 수 있다. 한 예로 투석을 반복해 온 환자들은 이젠 힘들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는데 이때 의사가 간접적인 방법으로(직접 권할 수 없다) 은근히 유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투석 환자들은 비록 그 순간만 넘기면 다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간다. 환자 쪽이나 또 의사 쪽에서나 자칫 악용할 위험요소가 있다고 본다. 영어로 'physician-assisted suicide(의사 도움을 받아 시행하는 자살)'란 표현을 사용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류) 존엄사의 역사를 보면 호스피스나 안락사는 개인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정했다. 나치정부의 경우 선천성 기형이나 지능부족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안락사 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무모한 죽음을 당한 케이스가 몇십만 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시대가 변화되어 이것을 인간의 (죽을) 권리라는 이슈로 접근하는데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치료비용, 보험관계 등등 철저한 자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시행을 두고 이견들을 내고 있는 것이다."

"(안) 의사라고해서 생명을 대하는 시각이 항상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닥터 류가 지적했듯이 미국처럼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실상 환자에게 의사가 마음을 존엄사쪽으로 유도할 수 있는 유혹들은 사실상 너무나 사방에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극단적인 예로 암선고를 받았을 때 처음에 충격을 받고, 원망하다가 절망하는 단계에 있는 환자에게 옆에서 의사가 '단숨에 고통에서 해결될 방법'이라며 간접적으로 존엄사를 부추길 수 있는 것이다. 닥터 조가 언급한 것처럼 우울한 상태에 있는 환자로서는 쉽게 그쪽을 택할 위험성이 크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존엄사법을 환영하지 않는다."

"(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환자들이 충분히 이성적으로 시간을 갖고 고민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교육과 계몽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소망 소사이어티에서의 이같은 교육프로그램이 더 홍보돼야겠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 좋은 점은 뭘까.

"(류) 굳이 한가지 든다면 오랜 투병 끝에 진정으로 죽음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재차 강조하지만 그 전에 호스피스, 증세완화치료와 충분한 상담이라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카이저병원에서는 윤리위원회가 있다. 만일 존엄사를 생각한다면 당사자가 결정을 잘 내릴 수 있도록 전문적인 상담을 충분히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선택하게 된다면 나치정부 때처럼 무모한 생명들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리를 해주신다면.

"(안) 설사 6개월밖에 못산다고 해도 지금 본인이 약을 먹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과연 존엄한 죽음일까 의문이 생긴다. 유선생님 말씀처럼 이를 계기로 호스피스와 증세완화치료에 대한 교육과 계몽이 더 요구됨을 느낀다."

"(조) 투석이 힘들어서 이제 그만 받고 싶다며 존엄사를 얘기하는 환자에게 나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말릴 것 같다. 그리고 그 환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증세를 어떻게든 완화해주는 데 집중할 것 같다. 그것이 의사인 내가 할 일이므로. 그래서 개인적으로 참 궁금하다. 존엄사법에 의료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닥터 안의 말처럼 의사라고 해서 다 한마음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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