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낮은 곳으로… 교황의 발걸음이 변화 불렀다
[특별기획] 미국을 흔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바람 <상>
미국을 방문한 교황의 발걸음은 힘이 있었다. 우선 미국 사회 각 분야가 그의 방문을 크게 반겼다. 우선 미국 정부가 교황을 극진하게 맞이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항으로 나가 교황을 직접 맞이하는가 하면 백악관은 대대적인 의전행사를 진행했다.
교황을 위해 레드카펫을 깔고 예포를 울린 것은 백악관이 세계적 지도자를 맞이할 때 하는 각별한 예우를 행한 것이다. 그만큼 교황의 방문을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특히 백악관은 의전행사 참석자들에게 교황에 대한 호칭을 "Your Holiness(성하.聖下)"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것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등과 함께 미국 정부가 종교 지도자에게 유일하게 붙이는 호칭이기도 하다.
교황은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연방의회(24일) 및 유엔 총회 연설(25일)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미국인들은 그의 연설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평소 사회 양극화의 폐해를 비판해 온 교황이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미국'이란 국가에서 자신이 일관적으로 주장해 온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극진하게 맞이한 미국 정부
미국 신자들 뜨거운 분위기
교황은 이번 미국 방문에서 뉴욕과 필라델피아 워싱턴DC 등지를 방문했다. 교황이 들른 각 도시 분위기는 한껏 들떴다.
뉴욕의 경우 지난달 25일 맨해튼에 있는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교황이 집례하는 대중미사가 열렸다. 이때 교황은 센트럴파크를 거쳐 미사 장소로 향했는데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 큰 혼잡을 빚었다. 또 연도에 있는 맨해튼 빌딩 벽면에도 교황을 환영하는 거대 벽화도 그려졌다.
뉴욕시정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성명까지 발표했다.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성명에서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가진 교황을 초청했다"며 교황의 방문을 적극 반겼다.
워싱턴DC는 교황 방문 기간 동안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공무원들의 재택근무까지 실시했다. 그만큼 워싱턴DC를 포함하는 미국 전역이 교황 방문에 큰 의미를 두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들이다.
자본주의의 상징 미국에서
교황이 전한 메시지에 주목
그러나 그의 실질적 행보는 음지로 향했다. 교황은 워싱턴DC에서는 노숙자들을 만났고 가톨릭 자선단체의 봉사 현장도 찾았다. 또 남미 출신인 교황은 뉴욕에서는 세인트패트릭성당으로 이민자와 빈민들을 초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시간도 가졌다.
한 관계자는 "가톨릭계 입장에서 이번 교황 방문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이라며 "특히 내년 미국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동성결혼.낙태.이민 등 현안과 시리아 난민 문제 등을 두고 교황이 전한 메시지는 분명 파급력이 있었다"고 환영의 목소리를 전했다.
한편 이번 방미 기간 동안 교황이 미사에서 사용한 나무 의자도 메시지 그 자체다. 교황의 뜻에 따라 소박하게 만든 나무 의자는 '통합'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미국 내 이주 노동자 및 교도소 수감자들이 직접 제작했다. 그만큼 의자 하나에도 의미가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미국 방문 동안 교황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미국인 1829명 대상 표본오차는 ±2.3%)는 교황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선 미국인의 66%가 "교황을 매우 좋아한다"고 답했다. 특정 기독교 종파의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선호도다. 반면 "교황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은 14%에 그쳤다. 심지어 교황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가톨릭을 넘어 범종교적이다. 가톨릭 신자(87%)는 물론 개신교 신자(61%) 무신론자(63%)까지 포함해 종교 유무에 상관없이 절반 이상이 교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금기시된 가톨릭 이슈도 포용
교계 내부에서도 시각 변화
교황의 행보는 가톨릭 내부의 금기시되는 이슈까지 다가서면서 미국인들의 기존 인식을 변화시켰다. 교황은 낙태.동성애 등 가톨릭 내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슈에 대해서까지 관용적인 발언과 태도를 보였다. 가톨릭 신도는 물론 일반인들을 놀라게 하고도 남을 일이다.
교황은 낙태에 대해 "비극이고 분명 잘못된 행위다. 하지만 낙태에 대해 깊이 뉘우치는 여성들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가톨릭 '자비의 희년' 기간 동안 모든 사제에게 부여한다"고 천명했다. 자비의 희년은 '마리아 대축일'인 12월 8일부터 내년 11월 20일(그리스도 대축일)까지다.
이러한 교황의 발언은 파격에 가깝다. 이는 가톨릭이 교리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진보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바탕이 되고 있다. 일부에서 정책적으로 발언을 흘렸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미국 내 가톨릭 신자들의 변화된 시각이 엿보인다. 가톨릭 신자의 43%는 자녀 양육을 두고 "동성애자 커플도 아이를 키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또 가톨릭은 피임 등을 반대하는데 "산아 제한 정책을 허용해야 한다"(76%) "이혼을 수용해야 한다"(62%) 등 가톨릭 내부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완고하기 그지 없었던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져온 변화의 바람은 그가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미국을 흔들고 있다.
박종원.장열 기자
park.jongwo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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