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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의 완성, 앞으로 15년은 더 걸릴 것

고려대 초청으로 한국 방문

5%의 남은 분단은 정서 문제
한 세대로는 불가능한 과정
통일은 자체 역동성으로 찾아와


겉보기에 독일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왔다. 그러나 그 통일은 1949년에서 89년까지 아데나워의 서방정책, 브란트의 동방정책, 콜의 통일외교의 긴 여정 끝에 온 것이다. 89년 베를린장벽 붕괴로 온 통일은 물리적·법적 통일이었다. 그러나 동·서독이 하나가 되는 진정한 통일은 화학적·정서적 통합(Integration)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주(Land) 정부 차원에서 통일 후의 통합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직접 수행한 토마스 쿤츠 전 튀링겐주 법무부 차관보와 알빈 네스 전 작센주 복지보건청소년가족부 차관이 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이 주최한 심포지엄에 참석하러 한국에 왔다. 언젠가는 한국이 직면할 문제를 그들은 어떻게 해결했는가를 김영희 대기자가 3자정담으로 물었다.

김영희=법적.물리적 통일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사회통합이 따릅니다. 통일된 독일의 내적 통합(Inne Einheit)을 위해 먼저 한 일은 동.서독의 생활 수준을 균등하게 하는 것인데 이걸 위해 네스 차관께서는 사회복지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수행하셨습니다. 이젠 내적통일 사회통합은 완성된 겁니까.

네스=독일은 내적 통합은 95% 정도는 이룬 것 같습니다. 높은 비율이죠. 95% 중에서 70%는 비교적 빠르게 이뤄냈고 나머지 80%까지도 비교적 빨리 이뤄졌는데. 90% 95%까지는 더디게 진행됐어요. 나머지 5%는 앞으로 15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그 남은 5%는 어떤 분야입니까.

네스=사람들의 정서에 관한 부분입니다. 옛 동독 사람에게 주체적인 주권의식을 가지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90년 독일 통일로 동독지역은 모든 것이 몰락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체념하는 정체성 상실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정체성을 갖게 하고 정서적으로 한민족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게 나머지 5%의 작업일 것입니다.

김=네스 차관은 고려대 강연에서 삶의 현실의 통합은 한 세대에는 극복할 수 없는 길고도 힘든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걸 다 포함해 지금까지 95%를 달성했다는 겁니까.

네스=그건 어느 분야를 보느냐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을 것 같네요. 독일 기본법(헌법)에는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습니다. 독일은 연방국가라 주마다 정책이 다르고 나름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주마다 경제적 수준의 차이도 많아요. 각 주는 그들만의 정체성이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생각도 달라요. 경제통합이 아직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았어요. 임금 수준을 보면 동독 출신들의 임금이 아직은 서독 사람의 90~95%입니다. 독일 정부는 2020년까지는 경제적인 특히 노동 임금을 100% 균등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김=통일하면서 동.서독의 연금 수령액을 1대 1 비율로 해 동독의 연금 생활자들이 큰 이득을 봤습니다. 그 부담을 안은 서독인들이 불평하지 않았습니까.

네스=당연히 반발이 많았지요. 그건 단지 연금뿐 아니라 전체적인 통일과 관련된 경제 부분에 걸친 불평이었어요. 89년에서 90년 공식 통일까지는 통일에 대한 희열(Euphorie)이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희의 분위기는 금방 식었어요. 89년 말에만 헝가리와 체코를 통해 서독으로 30만여 명이나 넘어왔습니다. 89년 말부터 90년 10월 3일 공식 통일까지 또다시 25만여 명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왔습니다. 그건 서독에 큰 경제적 부담이었어요. 동.서독은 화폐를 통합하면서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 차이가 1대 5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1대 1로 교환해 주고 3000마르크 이상일 경우에는 1대 2의 교환비율을 적용했습니다. 생산성의 현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임금도 1대 1을 적용했습니다. 서독 사람들은 당연히 똑같은 임금을 받는 동독 사람들의 낮은 생산성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91년 초까지만 해도 생산량에서 옛 동독은 서독의 54% 수준이었어요. 지금은 80% 정도 됩니다. 그런데도 1대 1로 교환해주다 보니 부담이 컸고 그런 큰 부담의 일부는 사회보험.사회보장에서 많이 떠안아야 했습니다. 옛 서독 연방 주들의 막대한 지원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김=동독 출신들이 옛 동독에 향수를 느끼는 오스탈기(Ostalgie) 현상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네스=그렇습니다. 그러나 오스탈기는 어린 시절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지 옛 체제에 대한 그리움은 아닙니다.  

김=쿤츠 차관보의 말대로 옛 동독체제에서는 사법권이 독립되지 않아 법이 정치의 시녀 노릇을 했는데 통일 후 동독의 법을 어떻게 정비했습니까.

김=네스 차관께서는 "통일이 되면 정의를 얻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얻은 것은 법치주의뿐"이라는 어느 동독 반체제운동가의 말을 인용하셨는데 정의도 법치 안에서 실현되는 것 아닌가요.

김=독일의 통일 경험에 비춰 한국은 언젠가 올 통일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쿤츠=통일이 생각보다 더 빨리 올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통일은 그 자체에 역동성이 있어 미리 계획을 짜놓는 건 무의미합니다. 통일은 자체의 역동성으로 찾아올 거란 점에 유념해야 합니다. 독일의 경우엔 통일 이후 민주적 사회복지적 국가가 가진 잠재성과 기회를 많이 봤습니다. 한국도 통일에 따르는 걱정보단 기회와 가능성을 더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유지혜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토마스 쿤츠는 …
마인츠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 출신이다. 통일 전에는 헤센주에서 고문변호사 등으로 일했고(87~90년), 통일 이후엔 튀링겐주 법무부에서 일하며 사법 쇄신 업무 등을 담당했다(91~94년, 98~2000년).

알빈 네스는 …
뷔르츠부르크대·본대에서 철학과 신학·법학을 전공했다. 뮌헨 복지행정법원 판사로 일한 바 있으며(73~78년), 통일 뒤 작센주에서 복지보건청소년가족부 차관으로 일했다(90~2001년). 지난해부터는 독일가족연맹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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