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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낮은 곳으로…교황의 발걸음이 변화를 부른다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 미국 방문… 미국 흔드는 교황의 바람 <상>

극진하게 맞이하는 미국 정부
미국내 들뜬 분위기, 기대 담겨

자본주의 상징 국가 미국에서
교황이 전할 메시지 이목 집중

금기시된 가톨릭 이슈도 포용
가톨릭 내부에서도 시각 변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탈하다. 늘 낮은 곳으로 향한다. 그의 걸음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미국이 지금 가톨릭 교황의 행보를 주목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22일)부터 27일까지 미국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에서 그가 미국 사회와 시대를 향해 남길 의미는 무엇일까. 이미 교황이 전하는 잔잔한 울림은 미국 사회 전반을 향해 강력하게 퍼져나가는 중이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

교황 맞이하는 미국은

교황의 발걸음은 힘이 있다. 벌써부터 사회 각 분야가 그의 방문을 반긴다. 우선 미국 정부가 교황을 극진하게 맞이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비행장으로 나가 교황을 직접 맞이하는가하면, 백악관은 의전행사까지 진행한다. 교황을 위해 레드카펫을 깔고, 예포를 울리는 것은 백악관이 세계적 지도자를 맞이할 때 하는 각별한 예우 의식이다.

백악관은 의전행사 참석자들에게 교황에 대한 호칭을 "Your Holiness(성스러운 존자)"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등과 함께 미국 정부가 종교 지도자에게 유일하게 붙이는 호칭이기도 하다.

교황은 연방의회(24일) 및 UN총회 연설(25일) 등도 예정돼 있다. 미국인들이 이번 연설에 이목을 집중하는 이유다. 평소 사회 양극화의 폐해를 비판해 온 교황이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미국'이란 국가에서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지가 관심사다.

교황은 이번에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DC 등을 방문한다. 현재 각 도시 분위기는 들떠있다.

뉴욕의 경우 25일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교황이 집례하는 대중미사가 열린다. 이때 교황은 센트럴파크를 거쳐 미사 장소로 향하게 되는데 현재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 맨하탄 빌딩 벽면에는 이미 교황을 환영하는 거대 벽화가 그려졌다. 뉴욕시는 지난 1일 이례적으로 성명까지 발표했다. 빌 드볼라지오 뉴욕 시장은 성명에서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가진 교황을 초청하게 됐다"며 교황의 방문을 적극 반겼다.

워싱턴DC는 교황 방문 기간 동안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공무원들의 재택근무까지 실시하기로 했다. 그만큼 미국이 교황 방문에 큰 의미를 두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들이다.

교황은 사회적 약자에게

반면 그의 실질적 행보는 음지로 향한다. 교황은 워싱턴DC의 노숙자들을 만나고 가톨릭 자선단체의 봉사 현장도 찾을 예정이다. 또 남미 출신인 교황은 성패트릭성당으로 이민자 및 빈민들을 초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시간도 마련했다.

가톨릭 김재동 부제(LA)는 "가톨릭계에서 이번 교황 방문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이라며 "특히 내년 미국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동성결혼, 낙태, 이민 이슈, 시리아 난민 문제 등을 두고 교황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미 기간 동안 교황이 미사에서 사용하게 될 나무 의자도 메시지 그 자체다. 교황의 뜻에 따라 소박하게 만든 나무 의자는 '통합'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미국 내 이주 노동자 및 교도소 수감자들이 직접 제작했다. 그만큼 의자 하나에도 의미가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현재 교황의 인기는 고공비행중이다.

교황의 방미를 앞두고 실시된 갤럽의 여론조사(미국인 1829명 대상ㆍ표본오차는 ±2.3%)에는 교황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담겨있다. 우선 미국인의 66%가 "교황을 매우 좋아한다"고 답했다. "교황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은 14%에 그쳤다.

심지어 교황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범종교적이다.

가톨릭 신자(87%)는 물론 개신교 신자(61%), 무신론자(63%) 등 종교 유무에 상관없이 절반 이상이 교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가톨릭 내부 시각도 변화

교황의 행보는 가톨릭 내부의 금기시되는 이슈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교황은 낙태, 동성애 등 가톨릭 내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슈에 대해서까지 관용적 발언 및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일 교황은 방미를 앞두고 "낙태는 비극이고 분명 잘못된 행위다. 하지만, 낙태에 대해 깊이 뉘우치는 여성들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가톨릭 '자비의 희년' 기간 동안 모든 사제에게 부여한다"고 천명했다. 자비의 희년은 '마리아 대축일'인 12월8일부터 내년 11월20일(그리스도 대축일)까지다.

이러한 교황의 발언은 파격에 가깝다. 이는 가톨릭이 교리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진보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바탕이 되고 있다.

최근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미국내 가톨릭 신자들의 변화된 시각이 엿보인다.

가톨릭 신자의 43%는 자녀 양육을 두고 "동성애자 커플도 아이를 키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또 가톨릭은 피임 등을 반대하는데 "산아 제한 정책을 허용해야 한다"(76%), "이혼을 수용해야 한다"(62%) 등 가톨릭 내부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황이 가져다주는 변화의 바람은 지금 미국을 흔든다.

교황 방문 종교계 반응

가톨릭 및 타종교 ‘환영’
개신교는 내심 ‘불편’


교황의 미국 방문을 두고 한인 종교계의 온도차가 나뉘고 있다.

우선 한인 가톨릭계는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특히 교황의 서부 방문 일정이 없다 보니 LA지역 가톨릭 신자들의 아쉬움은 크다.

가톨릭 신자 안젤라 이(34ㆍLA)씨는 “요즘 성당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미국 사회도 이번 방문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로서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하지만 이번에 LA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직접 교황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전했다.

김재동 종신부제는 “이번에 교황이 보여주는 모습, 전달하는 메시지 등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가 주목해야 할 내용이 많을 것”이라며 “꼭 종교적 관점이 아니여도 현대인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번 교황 방미가 기대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나란다불교센터 박재욱 법사는 “이번 가톨릭 교황의 방미를 계기로 새삼 그분의삶을 돌이켜 보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며 “교황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든 종교인, 성직자들에게 본보기가 되길 바라고 많은 분들이 감동받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반면 개신교계는 내심 불편한 기색이다.

LA지역 한 목회자는 “가톨릭 교황이 소탈한 모습도 자주 보여주고 귀담아 들어야 할 말도 많이 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분명 역할이 크다고 본다”며 “하지만 종교적으로 보면 교황을 너무 신격화시키고 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인데 사람들이 그를 어떤 신비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아서 우려된다”고 말했다.

개신교인 이준성(38ㆍ세리토스)씨는 “솔직히 유명세가 전부는 아니지만 미국 사회가 이번 교황 방문을 주목하는 걸 보며 한편으론 가톨릭의 그런 영향력이 부럽기도 하다”며 “교황의 탈권위적 행보와 겸손한 모습 등은 정작 개신교에게 부족한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왜 우리에게는 교황 같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지도자가 많이 없는지 아쉽기도 하다”고 말했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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