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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오디세이] 그들은 왜 합창을 하는가…"멋진 화음에 저절로 힐링…헤어날 수 없는 마력"

연습 시작하면 몰입·무아 경지
하모니 만들며 이해·겸손 배워
출신 연줄 없어도 쉽게 하나돼

썰물처럼 밀려들어온 화음은 듣는 이의 마음을 순식간에 빼앗아 밀물처럼 빠르게 퍼져 간다. 그렇게 방울방울 튀어 오른 음표들은 각자의 마음과 사연을 담아 다시 악보 위로 가지런히 내려앉는다. 이토록 아름다운 위로를,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다독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만큼 다른 화음들이 켜켜이 쌓여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곳, 바로 남가주 연세콰이어(단장 박은희) 연습실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이 특별한 풍경 속 커져가는 궁금증 몇 가지. 이들은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이토록 합창에 목을 매는 걸까.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일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곳으로 모여드는 걸까. 그곳엔 어떤 꿀단지가 있어 이들을 불러 모으는 걸까. 함께 모여 노래 부른지 올해로 10년째인 남가주 연세콰이어 연습 현장에서 그 답을 찾아 봤다.

내달 10일 공연 앞두고 구슬땀

#악보 위를 질주하다

지난 15일 오후 6시30분 나성영락교회 은혜관, 오전부터 내린 비로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뚫고 40여명의 단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40대부터 70대 시니어들까지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각기 다른 이들은 단지 합창이 좋아 연세대 동문과 동문 가족이라는 끈끈함 하나로 의기투합한 이들이다. 30여분 뒤 식사를 마친 단원들이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10년째 합창단을 이끌어 온 이영두 지휘자의 노련한 지휘 아래 단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입을 맞춘다. 5분 전까지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프로 못지않은 무서운 몰입도를 보여준다. 지휘자의 시작 신호와 함께 그곳에 모인 80개의 눈동자들이 순식간에 악보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연습은 '그리운 금강산'을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 추모곡인 '내 영혼 바람 되어'를 지나 '춤추는 춘향이' '베사메무초' 등 총 10여곡 정도를 쉼 없이 부른 후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이들이 이처럼 최근 일주일에 두 차례씩 연습에 매진하는 이유는 정기연주회가 내달 10일로 임박했기 때문. 매년 하는 정기공연이지만 올해는 10주년이라는 특별한 타이틀도 있는데다 지난달 한국 국립합창단 초청으로 '광복 70주년 기념 한민족 합창축제' 미 서부지역 대표로 고국 무대에 선 뒤 단원들의 열의가 더 높아져 그 어느 해보다 연습 열기가 뜨겁기 때문이기도 하다.

#합창은 힐링, 합창은 나눔

밤은 점점 깊어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100년 묵은 산삼이라도 먹은 듯 단원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노래가 나인지 내가 노래인지 모르는 몰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들을 이곳에 이렇게 세워 영혼을 울리는 노래를 하게 하는 이 불가사의한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노래를 부르다보면 쌓인 스트레스도 날려 보내고 아름다운 화음에 마음을 실으면 저절로 힐링이 되요. 합창에 몰입하다 보면 그 곡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지친 마음까지 정화가 되거든요. 또 공동 작업인 만큼 성취감도 커 공연이 끝난 뒤 그 벅찬 마음은 함께 한 이들만 공감할 수 있는, 헤어나올 수 없는 마력 같은 것이죠.(웃음)"(박은희 단장)

이뿐만 아니다. 이들은 말한다. 합창은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고 이어주는 역할을 해 삶에 대한 겸손함과 이해를 배울 수 가장 좋은 스승이라고.

"이곳에 모인 이들은 서로 다른 연령, 직업, 이민 배경을 가지고 있죠. 그냥 사회에서 만났다면 바로 그런 차이들로 인해 어울릴 수 없었겠지만 합창을 함께 하다 보니 바로 그런 다름들이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죠. 서로 다른 소리가 만나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듯 말입니다." (정병국.70세)

이 차이를 인정하면서 만드는 하모니의 가장 큰 수혜자들은 바로 부부 단원들.

"이렇게 함께 노래 부르고 집에서도 함께 화음을 맞춰야 하다 보니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것 같아요. 티격태격하다가도 연습시간만 되면 자연스레 마음이 풀어지고 화음 맞추듯 마음도 맞춰지거든요."(제시카 유.48세)

그리하여 이들은 오늘도 함께 모여 노래한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처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열정적으로. 그리고 사랑한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순수하게. 또 그리하여 마침내 살아간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이주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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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별세 후 빈 자리
어머니와 함께 무대 서다


부부 단원이 주를 이루는 연습실 속 단박에 눈에 띄는 이들, 바로 이혜숙(69).제이 김(42) 모자다. 합창단 창립멤버인 이혜숙씨는 연세대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편과 함께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합창단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 2008년 남편이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그녀는 큰 실의에 빠져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런 모친을 위로하고 함께하기 위해 2009년 장남 제이씨가 선뜻 합창단에 합류한 것이다.

"아버지 장례식 때 연세콰이어가 아버지가 작곡한 곡을 부르는 것을 보고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죠.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사이좋게 두 분이 참석했던 연습시간에 어머니 혼자 가는 게 마음이 아파 함께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보다 제가 더 합창을 즐기게 돼 오히려 어머니께 감사하죠.(웃음)"

아들의 이 뜻 깊은 동행은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이혜숙씨에게 큰 힘이 됐다.

"너무 뿌듯하고 좋죠. 남편의 빈 자리를 아들이 채워주니 다시 힘을 내서 합창을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무엇보다 아들과 합창이라는 아주 특별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인 것 같아요. 그저 아들에게 고마울 뿐이죠."

현재 한미은행 부행장으로 재직 중인 제이씨는 한국에서 '서울시립 소년소녀 합창단'으로 활동했을 만큼 합창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노래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다르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일상에 치이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마련이죠.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와 이렇게 노래를 부르다보면 어느새 건조해진 마음과 영혼까지 치유 받는 느낌이어서 너무 좋습니다."

이 특별한 모자가 함께 부르는 노래는 분명 누군가의 메마른 일상에도 어머니의 밥상처럼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건넬 것이다. 그들의 노래가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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